학생과 학생, 학급과 학급, 학교와 학교 간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허위로 숫자를 부풀려 보고하는가 하면 심지어 오징어 다리를 잘라서 쥐꼬리라고 제출하기도 했다. 사실 오징어 다리를 살짝 불에 그을려 쥐꼬리라고 제출하면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이처럼 통계를 잡는다는 것이 수학이고 과학이면서 오징어 다리가 끼어들고 경쟁심이라는 불순물이 작용하면 그때는 수학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다. 오히려 그 수학의 공식이라는게 불순한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통계나 여론조사가 자주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종교계의 통계조차 그런 소리를 듣는다.
눈을 돌리면 곳곳에 교회가 많고 사찰이 많지만 실제로는 불교, 기독교 등 6대 종교의 신자 수는 전국민의 50.7%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각 교단에서 발표하는 신자 수를 합치면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다는 모순이 나타난다고 한다.
얼마 전 TV에서 모 지방의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의 교통량을 보도했는데 여기서도 통계의 불신이 도마에 올랐다. 처음 이 다리를 놓을 때 당국이 실시한 교통량 예비조사에서 1일 수천 대의 차량이 왕래하여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막대한 국민 세금을 쏟아부은 다리는 개통 후 너무 한산하기만 했다. 교통량 통계작성에 수학의 공식이 작용하지 않고 정치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효성을 제대로 예측하지 않고 많은 세금을 투입해 건설한 교량, 도로, 심지어 비행장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그 지역에 정치적 거물이 있을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이렇듯 통계는 순수한 수학공식이 보여주는 결과물이어야지 사(私)가 개입하면 안 되는 것이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의 경질로 빚어진 가계소득 통계방법의 논란도 이런 관점에서 국민들의 우려와 불신을 낳고 있다 하겠다. 특히 황 전 청장이 이임식에서 울먹이며 “나는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이 국가 통계에 대한 국민신뢰를 얻는 올바른 길이다”라고 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발언이다. 무엇보다 ‘신뢰’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공자에게 자공이 물었다. “정치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백성이 먹고 사는 ‘食’과 나라를 지키는 ‘兵’, 그리고 백성들로부터의 ‘信’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경제, 안보, 국민과의 신뢰가 아닐까? 자공이 공자에게 이 셋 가운데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냐고 다시 묻자 공자는 ‘信’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서양 속담에도 ‘점쟁이가 배부르고 통계학자가 배고프면 백성은 운다’는 말이 있다. 점쟁이도 통계학자도 앞으로 있을 일을 예언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지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점쟁이에 귀를 기울이고 바른 말하는 통계학자는 외면하지 말라는 경고다. 그렇게 통계는 국가 신뢰의 기본인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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