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교도소 개(犬)

1990년대 초 얘기다. 지역 내 한 기관 소속원에게 지시가 내려졌다. “교도소 개를 구해 오라.” 소속원은 그때 처음으로 ‘교도소 개’를 알았다. 말 그대로 교도소에서 키우는 개를 말했다. 재소자들이 버리는 ‘잔밥’을 먹여 키운 개다. 사료를 먹여 키운 시중 개와 달랐다.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었다. 소속원이 교도소를 찾아가 사정을 말했다. “개가 작은데, 돼지는 어떻겠냐.” “안된다. 반드시 교도소 개를 구해야 할 중요한 모임이다.” ▶그 ‘중요한 모임’은 기우회였다. 기우회(畿友會)는 경기도 주요 기관ㆍ단체 대표자들 모임이다. 법적 근거는 없지만 모임 자체의 상징성은 컸다. 현직 도지사가 전체를 관장했다. 조별(組別)로 편성된 모임에 각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도지사 외에도 검찰ㆍ경찰 등 사법기관과 정보기관 등 대표가 다 회원이었다. 가히 경기도의 ‘파워그룹’ 이었다. 그 기관이 조별 모임을 주관하는 차례였다. ‘교도소 개’를 찾아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 ▶기우회의 기원은 박정희 정부로 올라간다. 지역의 기관장들이 친목을 위해 만들었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모든 지역에 등장했다. 공화당 정부가 지역 통제를 위해 결성을 조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면면이 주는 아우라가 대단했다. 기업인들이 다 가입하고 싶어했다. 그 문호가 열린 것은 민주화 이후다. 그즈음 모임 성격도 변했다. 권력 모임보다는 사교 모임 성격이 커졌다. 이 모임에서 시작된 인맥이 비리로 불거지기도 했다. ▶인천 지역 모임의 이름은 인화회(仁和會)다. 박남춘 시장이 29일 특별한 선언을 했다. “인화회가 시민의 자리에서 시민을 대변하는 모임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는 마음으로 회장직 사퇴와 모임 탈퇴를 결정했다.” 인화회에는 즉각적인 변화가 감지됐다. 박 시장 탈퇴 이후 모임에 기관장 다수가 불참했다. 앞으로 모임 탈퇴를 선언하는 기관장이 더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제는 전국의 모든 모임이 뒤숭숭해졌다. ▶기우회, 인화회는 박정희 정부 시절 그것과 다르다. 적어도 권력을 찬동하는 통치의 수단은 아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대로(大怒)할 회원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왜일까. 혹시 이 때문 아닐까. 돌아보면 기우회든 인화회든 딱히 한 게 없다. 그 막강한 ‘힘’들이 모였는데 무엇을 해놨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니 시민들이 곱지 않게 본다. ‘힘 있는 사람들 만나 웃고 거들먹거리는 모임’. 자업자득(自業自得)일 수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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