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국가 사무를 지방정부에 대폭 이양하는 ‘자치분권 종합계획’이 공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 수준 지방분권’을 공언했지만 이를 지원할 재정분권 계획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는 등 총론 수준에 그쳐 기대보다는 실망과 우려가 크다. 과연 자치분권이 제대로 실현될까 의구심이 든다.
11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종합계획’에는 ‘우리 삶을 바꾸는 자치분권’이라는 비전 아래 6대 추진전략과 33개 과제가 담겼다. 종합계획 내용은 지난해 10월 공개된 ‘자치분권 로드맵’을 토대로 마련된 것으로 크게 진전된 것은 없다. 로드맵부터 계획 수립에 약 1년이 걸렸는데도 주민참여 확대, 지방재정 확충 등 큰 틀의 방향만 나열했을 뿐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계획은 거의 없다.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는 “자치분권 종합계획이 당사자인 지방정부 의견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 채 요식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데 그쳤다”며 “과연 누구를 위한 계획이며 진정으로 자치분권을 실현시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성명서를 냈다.
자치분권의 핵심은 재정분권이다. 하지만 알맹이에 해당하는 재정분권은 쏙 빠졌다. 정부는 현재 8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을 거쳐, 장기적으로 6대 4까지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원론적인 수준의 기존 목표만 반복 제시한 것으로 새로운 내용이 전혀 아니다. 국세의 지방세 전환 등 재정분권 구체안은 당초 올해 2월 발표 예정이었다가 부처간 이견으로 미뤄졌는데 이번 종합계획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 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돌려야 하는데 미루고 있어서다. 자신들의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관계부처의 소극적인 태도와 비협조가 문제다.
정부의 지방세 확충 방안은 소득세ㆍ소비세를 중심으로 지방세수를 늘린다는 것이다.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11%인 지방소비세 비중을 늘리고 소득세·법인세의 10% 수준인 지방소득세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정부가 지방세를 늘리려는 이유는 지자체의 복지비 부담이 늘어서다. 2008~2017년 예산 증가율은 중앙정부 6.6%, 지자체 5.0%이지만 복지지출 증가율은 중앙정부 7.5%, 지자체 9.3%로 지방 부담이 더 많아졌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지방세 확충은 시급하다. 계속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재정분권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치분권은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 재정분권 빠진 자치분권은 있을 수 없다. 진정한 자치분권은 중앙이 독점하고 있는 권한뿐 아니라 돈(세금)까지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자치분권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국세의 지방세 이양 방안 등 재정분권을 획기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안을 하루빨리 확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허울뿐인 자치분권에 지방민심이 외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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