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에서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U-23국가 대표 축구 팀 코치로 있는 김은중.
그는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 공에 눈이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고 끝내 실명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축구를 했다.
축구선수에게 빠르게 패스된 공을 차는데 실명은 큰 약점이다. 시야와 초점이 발끝 동작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은중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계속했다.
심지어 시력도 안 좋은데 캄캄한 밤 운동장에서 공을 모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결국 그는 훌륭한 공격수가 될 수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처럼 그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1996년 미국 아틀랜타 올림픽 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마라톤에서 연출됐다.
숨가쁘게 달려온 선수들이 운동장에 들어섰고 트랙을 돌아 결승점을 향했다. 관중들의 환성이 터졌다. 곧 이어 1등에게 월계관이 씌어졌고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막을 내린 즈음 뒤늦게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트랙을 뛰는 선수가 있었다. 내전중인 아프가니스탄의 압둘 베사르와시키.
자리를 떠나려던 관중들은 일제히 꼴찌로 트랙에 들어서서 비틀거리는 그 선수를 향해 ‘포기하지 마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스타디움의 모든 눈은 그 꼴찌를 향했고 결국 그가 완주를 하자 만세를 부르는 등 마라톤 1등이 바뀐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4시간 24분 17초. 1등과 배가 되는 기록이었지만 그 아프가니스탄 선수는 부끄럼보다 ‘해냈다’는 것에 벅차하며 그를 격려하는 관중에게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무엇 보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꼴찌로 트랙을 도는 선수를 비웃지 않고 ‘포기하지 마라’고 응원을 보내는 관중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 응원에 힘입어 비틀거리던 압둘 베사르와시키는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꼴지를 했지만 내 조국 아프가니스탄을 알리는 것에 만족한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꼴지의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우리는 꼴찌에게 손가락질하고 실패자를 비웃는 것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심지어 비틀거리는 선수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사회가 아닐까?
지난 달 정부 서울청사에서는 ‘2018 실패사례 공모전’이 열려 화제가 됐었다. 실패의 아픔을 극복하고 성공한 23명의 ‘사장님’들이 나와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털어 놓는 자리였다.
한두 번 실패는 보통이며 10번이나 실패한 사람도 있었고, 여러 번 마포대교에 나가 한강에 투신하려 한 사람 등등 끝없는 실패담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일어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록 좌절에 빠져 마포대교를 찾기도 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꼴지 마라톤 선수가 비틀거리며 결승점을 향해 달릴 때의 ‘포기하지 마시오!’ 외침처럼.
이와 같은 생사는 요즘처럼 경제사정이 심각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때,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꼴지를 향해, 실패자를 향해 ‘포기하지 마시오’하는 응원이다. 장애자 시설을 이웃에 못 들어오게 시위를 하고, 자기 자식을 1등으로 만들기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하는 선생님이 없는 세상, 꼴지가 부끄럽지 않은 세상, 그것은 한낮 꿈일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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