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덕원신학교는 성 베네딕도수도회 산하에 있으면서 북한 지역의 신부를 양성하는 요람이었다. 그러나 1949년 북한 공산정권이 출발하면서 종교박해가 시작되었고 신학교의 아름다운 건물과 토지, 재산 등 모두가 몰수되었다. 그곳에 있던 신부, 수녀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거나 죽음을 당했으며 신학생들도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평양교구 홍용호 주교도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가 죽임을 당했다. 신부들은 대부분 신자들이 피란을 가야 한다고 간청했으나 ‘목자가 양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버티다 순교를 하였다. 심지어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신부를 발로 차며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트럭에 실어 끌고 가기도 했다.
북한 공산정권이 수립될 즈음 평양, 신의주, 원산 등에는 성당이 57곳이나 되었으며 신자들도 5만2천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평양을 아시아의 예루살렘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성당도 없고, 단 1명의 신부도 없으며 오직 ‘백두혈통’으로 분식된 김씨 세습정권이 유일한 종교가 되어버렸다. 모든 성당은 몰수되거나 파괴되었다. 신자들은 지하로 숨어들거나 남한으로 넘어왔다.
물론, 지금 평양에는 장충성당이라는 간판이 하나 있다. 그러나 신부도 없고 미사라는 흉내를 내고 있으나 미사의 핵심인 영성체가 없어 미사가 아닌 계획된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가 남아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의 주교 한 분이 평양을 갔을 때 어느 광장에서 평양 시민 하나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아멘’하고 속삭이듯 말하고는 쏜살같이 도망가더라는 것이다. 그 주교는 순간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도 북한에 숨어 있는 신앙의 불씨가 있구나 하고.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을 받고 북한을 방문하면 이와 같이 지하에 숨어있는 신앙의 불씨가 살아나서 뜨거운 횃불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그곳의 유일한 종교인 김씨 일가의 세습정치까지 위협이 될 텐데 그것을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실 1979년 요한 바오르 2세 교황의 폴란드 방문은 폴란드는 물론, 동유럽 공산정권을 무너뜨리는 전기가 되었으며,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쿠바 방문은 카스트로 폐쇄통치의 빗장을 푸는 기여를 했다.
북한에도 그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세계를 향해 북한이 벌이는 정치 쇼에 이용되지 않을까? 가짜 신자를 수만 명 급조하여 얼마든지 이벤트를 만드는데 능한 그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 김정은 위원장만 세계적 인물로 무대에 세우는 것이 되고 말 것이란 우려가 만만치 않다. 북한의 가장 취약점인 인권 문제에서도 오히려 면책 쇼를 벌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신부도 없고 신자도 없는 종교 불모지 북한에서 어떤 의도로 교황을 초청,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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