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들의 사우연원 수록… 귀중한 문헌 남겨
이에 대한 효종의 비답 속에 선비를 몹시 박대하는 글이 있어 이에 분개해 과거시험의 뜻을 버리고 학문에만 전념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후 1659년 봄에 천거로 익위사세마가 됐는데 효종이 승하 후 자의대비의 복상문제가 크게 거론되자 그는 3년설을 주장한 남인계열의 대비복제설을 반대하고 송시열, 송준길의 기년석을 지지해 서인 측의 이론가로 거듭났다. 많은 저술 외에 70여 권의 문집, 논어ㆍ맹자의 찬요, 유현들의 사우 연원을 수록한 책 등 후진들에게 귀중한 문헌을 남긴 인물이라는 평이다.
파주시 문화관광포털 제공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