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인물] 박세채 (1631~1695)

유현들의 사우연원 수록… 귀중한 문헌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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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채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31년 지금의 광탄면 창만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율곡의 ‘격몽요결’ 을 읽으며 학문을 출발했으며 율곡을 매우 존경했다. 그 무렵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묘종사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에 영남유생 유직이 이들의 문묘종사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박세체는 유직의 상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내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한 효종의 비답 속에 선비를 몹시 박대하는 글이 있어 이에 분개해 과거시험의 뜻을 버리고 학문에만 전념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후 1659년 봄에 천거로 익위사세마가 됐는데 효종이 승하 후 자의대비의 복상문제가 크게 거론되자 그는 3년설을 주장한 남인계열의 대비복제설을 반대하고 송시열, 송준길의 기년석을 지지해 서인 측의 이론가로 거듭났다. 많은 저술 외에 70여 권의 문집, 논어ㆍ맹자의 찬요, 유현들의 사우 연원을 수록한 책 등 후진들에게 귀중한 문헌을 남긴 인물이라는 평이다.

파주시 문화관광포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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