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고용비리 공기업에 히딩크 감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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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 붐을 일으키고 있는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 국민들은 ‘박항서 선생’이라 부른다. 그곳에서는 ‘선생’이라는 호칭이 가장 높은 경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정말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은 영웅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특히 베트남 축구팀을 이끄는 그의 리더십이 크게 평가받고 있다. 선수들과 감독의 신뢰가 두텁고, 팀 모두가 가족적 분위기여서 단합과 투지가 살아 있으며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리더십은 어디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물론 그 대답은 2002년 한ㆍ일 월드컵 때 함께 뛰었던 히딩크 감독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때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로 있으면서 호흡을 맞춰 왔다.

 

특히 히딩크 감독이 선수 선발에 학연, 지연, 혈연 그리고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실력자 줄서기에 단호한 입장을 보였던 것을 깊이 가슴에 새겼다. 사실 선수 선발 때마다 끊이지 않았던 잡음은 A선수는 실력자 누가 밀었고, B선수는 축구계 주류를 이루는 C대학 출신이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한국 스포츠의 고질병을 깨고 오로지 축구 경기실력과 잠재적 가능성을 보고 선수를 선발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줄서기’의 고질병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2018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의 야구선수 선발이 지금껏 회자되고 있는 것도 그런 악습 때문이다. 명예롭게 금메달을 땄음에도 박수 소리가 크질 않고, 마침내 선동열 감독이 국회 국정감사장까지 나가야 했음은 우리의 안타까운 현주소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 야당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8월 용역ㆍ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가스공사 임직원의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 24명을 정규직 대상자로 선정했다는 것,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직원의 어머니도 3명이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고용비리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국가스공사에 앞서 서울교통공사, 인천공항공사 등에서 불을 댕겼고 마침내 야당은 국정조사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KPS도 임직원의 자녀 35명, 형제ㆍ자매 5명 등 40명을 채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와 같은 보도를 접한 취업준비생이나 실업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얼마나 허탈할까? 바로 이런 것이 우리의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학자들에 따르면 과거에는 이런 불공정한 사태에 직면하면 ‘불가항력’의 운명으로 받아들였지만 오늘의 패자들은 자신의 낙오가 사회적 요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매우 분노하고 억울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최근 잇달아 터지는 고용비리 의혹에 크게 우려를 갖는 것도 바로 사회적 갈등, 패자의 심각한 좌절감 때문이다. 그렇게 공정성을 잃게 되면 사회는 병들고 정치는 불신을 받게 된다. 가정에서도 하찮은 차별이 갈등을 일으키고, 마침내 가정불화로까지 번지게 된다. 가령 엄마가 자녀들에게 콜라를 따라주면서 어떤 아이에게는 한 컵 가득히 부어주고 나머지는 그보다 적게 따라 주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아주 작은 문제에서 가정비극이 싹틀 수 있다.

 

왜 나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왜 나에게는 공정하지 않은가? 이렇게 패자의 분노가 가정과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민주주의는 성장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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