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포도 전파한 공베르 신부
아울러 3ㆍ1 운동 당시 구포동 성당으로 피신한 이들을 일본 순사들로부터 지켜낸 데 이어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지켜내기도 한 의인으로 평가받는다. 광복 이후엔 남북전쟁이 발발한 1950년 7월15일 평양으로 납북돼 그해 11월12일 평안북도 중강진에서 선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의 흉상은 지난 2012년 5월 안성시에서 제작해 생전 그가 안법학교를 설립하고 현대교육 실시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점을 기리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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