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리선권 ‘말’(言)이 통일의 걸림돌이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막말이 또 논란이다.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10ㆍ4 선언 11주년 기념식이 있었던 평양 고려호텔에서 했다고 한다. 상대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이다. “당에서 예산을 총괄하는 사람”이라는 우리 쪽 소개말에 나온 반응이었다고 한다. 김 의원 등 참석자들은 “본질이 흐려진다”며 말을 아낀다. 비슷한 말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야당이 다시 날을 세웠다. 자유한국당은 “여당이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북을 두둔한다”며 “리선권 교체시켜라”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리선권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혼날 수 있다. 듣기에 따라서 수령 모독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발언 논란을 대여 공세의 반짝 소재로 삼았던 야당이다. 또 한 번 설화(舌禍) 정국의 고삐를 댕길 움직임이 엿보인다.

한국당의 이런 움직임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북이 만들어가고 있는 큰 틀의 화해에서 지엽적 잡음에 불과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은 그렇다. 여기에 리선권의 막말이 북한 수뇌부의 뜻이라고 볼 어떤 증명도 없다. 이를 빌미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싸잡는 것은 침소봉대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 소재로 이를 끼어 넣은 것도 적절치 않다. 막말한 사람엔 말도 못 하면서 엉뚱한 제3자를 고소하는 꼴이다.

정부 여당의 오판은 다른 데 있다. 분명히 국민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다. 이재용, 최태원 등은 국민을 대표해 간 기업인이다. 이들을 앉혀 놓고 ‘막말’을 했다면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김태년 의원은 성남시 수정 구민들이 뽑아 보낸 대표자다. 이런 김 의원에게 신체적 특징을 대놓고 풍자 삼는 발언은 성남시민을 언짢게 하는 일이다. 정치공학적 접근은 경계해 마땅하지만, 이런 국민 정서까지 묻고 가면 안 된다.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을 방문했다. 숙인 고개의 각도가 과했다 해서 국민적 비난이 일었다. 그때 정부 관계자 누구도 일왕을 두둔하지 못했다. 2013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빌 게이츠를 접견했다.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악수를 한 빌 게이츠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청와대 관계자 누구도 빌 게이츠를 옹호하지 못했다. 외교란 그런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에 국격을 대입시키는 것이다.

이 순간까지 북측이나 리선권의 해명은 없다. 우리 정부 여당이 혼자 감싸 안고 있다. 처음에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던 냉면 발언이 “건너 건너 들었다”로 바뀌었고, “본질이 흐려지면 안 된다”던 배 나온 사람 발언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바뀌었다. 국민이 곧이곧대로 믿어줄 리 없다. “리선권 얘기를 우리 정부가 덮어주려 한다”는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안 들어도 될 비난을 정부 여당이 자청해 듣는 셈이다.

당당해질 수 없나. 한두 번도 아니고, 이쯤 되면 리선권의 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툭툭 내뱉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남북 화해의 판을 아슬아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북의 환대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다. 답답하다. 북의 환대가 없었다는 게 아니다. 남북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아니다. 북한이 환대하고, 남북 관계가 공고하니 더욱 리선권의 돌출 발언에 경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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