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닥터헬기’와 잔디밭에 길을 낸 총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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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대전 때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 장군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영웅이 되었다.

그는 귀국하여 미국의 명문, 컬럼비아대학의 총장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가 컬럼비아대학 총장 시절에 있었던 일화 한 토막.

하루는 그가 대학 캠퍼스를 돌아 보고 있는데 인부들이 잔디밭 둘레에 말뚝 박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왜 여기에 말뚝을 박는가?”하고 총장이 물었다. 그러자 작업반장이 “총장님, 학생들이 자꾸만 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강의실로 가는 바람에 잔디가 엉망이 됩니다. 그래서 학생들 못들어 가게 이렇게 말뚝을 박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총장은 이 말에 빙긋이 웃으며 “그러면 잔디밭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내주면 되겠네”하며 즉시 길을 만들어 주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학생들도 죄의식 없이 떳떳하게 강의실로 갈 수 있어 좋아했고, 잔디도 잘 보존된 것은 물론이다.

 

나는 가끔 정부의 개혁정책이 지지부진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젠하워의 이 일화를 생각한다. 바로 개혁은 멀리 있지 않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규제개혁이 앞에서는 손뼉을 치고 뒤에서는 꼼짝달싹 못하게 묶여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공무원에 묶이고, 국회에 묶이고… ‘묶는 것’에 익숙해 온 나쁜 관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실감나는 사례가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됐는데 바로 이국종 교수가 증언한 닥터 헬기 문제다.

사고현장에서 병원 수술실까지 응급환자를 옮기는데 보통 7시간30분 소요되어 귀중한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지만 닥터 헬기를 이용하면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이국종 교수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왜 닥터 헬기를 띄우지 않는가? 정해진 인계점(장소)에서만 이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어도 허가된 장소가 아니면 착륙이 거부되는데 이런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지난 9월, 전남 여수에서 해경 승무원 박모씨가 훈련 중 사고로 다리가 절단되었으나 닥터헬기를 띄울 수 없었고, 결국 그는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해경은 물론 119, 그리고 외상센터 등에 닥터헬기가 있었으나 바로 이런 인계점 때문에 헬기를 띄우지 못했다는 것이 당시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의 주장이다.

 

이처럼 인계점 문제로 닥터헬기를 띄우지 못한 케이스가 지난 2015년부터 지난 8월까지 80건이나 되고 있다니 믿어지질 않는다.

 

그러면 이와 같은 불합리한 구조가 왜 개선되지 않는가?

이국종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높은 분께 이야기하면 시정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간급 관리자의 선에서 막힙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겁니다. 심지어 무전기도 없어 카카오톡으로 직원들과 업무연락을 합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높은 사람은 생색을 내지만 그 뒷감당이 두려운 실무급 간부들은 ‘복지부동’을 하는 것이다.

 

또 헬기의 소음으로 인한 민원도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닥터 헬기가 동네마당에 착륙하면 ‘사랑의 천사’가 왔다고 반기는데 우리는 집값 떨어진다고 반발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주민들의 의식전환도 절실하다. 어디 닥터헬기만 문제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규제의 족쇄. 오늘 풀겠다고 하지만 내일은 잊어버리고 국회에서는 낮잠을 잘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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