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사학에 맞서 한국사 연구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며 성장한 그는 1905년 미국 선교사의 소개로 일본에 유학해 1908년 졸업할 때까지 유학생들의 자강운동단체였던 태극학회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귀국하여 평양의 대성학교, 의주의 양실학교, 한성의 경신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고 유학생활에서 구상한 자강운동론을 교육활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1910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교육을 통한 자강운동의 보급을 포기하고 다시 일본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 내 조선인 유학생등이 조직한 비밀결사인 동제사에 가입하고 여기서 함께 활동하였던 박은식, 신규식, 신채호 등과 함께 박달학원의 교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1918년 귀국하여 이듬해 3ㆍ1운동에 참가해 8개월을 복역하였다. 이후 1939년 타계할때까지 그는 국사학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면서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구리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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