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으로 포장된 형편 없는 음악
‘퀸’ 영화에 모두가 ‘위대한 밴드’
이제 인정하고 받아 들일 수 있다
첫째는 잡탕식 음악이다.
화성학에 기초한 화음 부분이 많다. 흡사 합창단의 하모니를 연상케 한다. 음악을 클래식한 고품격으로 보이게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도입부터 노래 전체에 깔려 있다. ‘위아 더 챔피언’도 코드 전환 부분마다 등장한다. 퀸 팬들은 이걸 자랑한다. 록 밴드에서 볼 수 없는 음악성이라고 칭송한다. 실제로 어느 밴드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실험이다. 영화에서도 프레디 머큐리가 자랑삼는다. “퀸만의 음악, 오페라를 접목해 만들겠다”.
이걸 그냥 봐줄 수 없었다. 클래식에서는 기초에 불과한 기본 화음이다. 이 단순한 기술을 음악 곳곳에 끼워 넣었다. 그래놓고 록과 클래식의 접목이라고 우겼다. 이도 저도 아닌 잡탕으로 봐야 하지 않나. 수준 떨어지는 밴드 음악을, 낮은 단계의 클래식 기술로 위장한 거다. ‘퀸의 음악은 사기야’. 40년 전 어느 날, 이 얘기로 밤을 새웠다. 학생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의 겁 없는 논쟁이었다. 그날 밤, 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둘째는 배울 것 없는 실력이다.
철저하게 조화를 중시하는 음악이다.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연주에는 애드립이 없다. 라이브에서도 웬만하면 원곡의 연주를 따른다. 로저 테일러의 드럼은 절대로 튀지 않는다. 전체 템포를 지켜가는 리듬 악기의 원칙을 고수한다. 이래서 퀸의 라이브는 언제나 완벽하다. 변화가 불러오는 실수도 없고, 즉흥 연주에 따른 어색함도 없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다. 원곡, 공연 실황, 영화 속 립싱크가 똑같다.
실력에 자신 없어서라고 보였다. 음악 전체를 지배하는 지미 페이지(록 밴드 레드제플린)의 메탈 사운드쯤은 돼야 했다. 수백 번을 연주해도 매번 새롭게 만드는 에릭 클랩턴(록 밴드 야드 버즈)의 애드립쯤은 돼야 했다. 바흐의 푸가를 연주하는 존 로드(록 밴드 딥퍼플)의 건반 실력쯤은 돼야 했다. 레코드를 반복하는 연주에 무슨 록의 저항정신이 있나. 프레디 머큐리의 백 밴드라고 해야 옳다. 이 역시 누구의 동의도 얻지 못했다.
셋째는 멤버 개개인의 고학력이다.
노래만큼 유명한 게 멤버들의 학력이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물리학 박사다. 40년 전에 이미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치의학자다. 명문 런던 호스피털 메디칼 칼리지를 졸업했다. 베이시스트 존 디콘은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퀸 2집을 낼 때까지 학교 교사였다. 40년이 지났어도 퀸의 학력을 뛰어넘는 록밴드는 없다. ‘퀸=공부 잘하는 천재들 그룹’이었다. 영화도 퀸 멤버의 이런 학식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래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좋아했다. 노래 가사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그래도 멤버들의 출신 대학과 전공은 줄줄 외웠다. 음악에 학력이라는 허영을 덮어씌운 거였다. 진정한 음악인은 음악만을 추구하는 장인이어야 했다. 마약 중독자 어머니…위탁 가정의 탄압…. 여기서 만들어진 지미 헨드릭스의 ‘Hey Joe’. 박사 논문 쓰며 부업 하듯 만드는 퀸의 노래와는 깊이부터 달랐다. 이 주장은 특히나 맹공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덧 40년이다.
그 퀸이 다시 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누적 관객 300만을 넘긴 지 오래다. 스크린 앞 관객이 모두 열광한다. 극장 떼창이란 낯선 광경에 외신도 놀랐다. 퀸을 추억하는 글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특히 중년 아재들의 추억팔이가 한창이다. “다 커서야 퀸의 위력을 알게 됐다”(최상진 기자). ‘50대 아재는 왜 퀸을 보며 울었나’(양성희 논설위원)…. 이들의 추억 속에서 퀸은 여전하다. 위대하고, 역사에 남을 록 밴드다.
나도 가서 봤다. 그래서 쓴다. 여전히 저급한 음악이다. 어설프게 클래식에 버무린 잡탕 밴드다. 뭐 하나 배울 구석이라곤 없는 1인 백 밴드다. 음악과 무관한 학력을 상품으로 포장한 상업 밴드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세상 사람들은 퀸을 좋아한다. 필요한 곳마다 퀸의 노래가 있다. 록 역사에 위대한 밴드로 결론 났다. 돌아보면 그때도 그랬었다. 혼자서 우겨대던 퀸 까기는 언제나 씁쓸한 패배로 마무리 됐었다.
녀석들은 더 신났을 거다. 40년 전 승리를 또 만끽하고 있을 거다. ‘역시 퀸이 최고야’. 그런데 약 오르지 않다. 더 토론할 생각도 없다. 극장을 나서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음악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거였다. 대중성의 평가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하는 거였다. ‘퀸 현상’이 아재들에 광풍처럼 분다더니. 이런 것도 그런 건가 보다. 40년 전 치열함에 여유를 주는 것, 그리고 그 또한 소중했음을 알게 해 주는 것….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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