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 판사의 글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원고지 32장 분량의 글을 통해 지난 19일 법관대표회의의 법관 탄핵의결과 관련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또 탄핵으로 의결된 법관들에 대해 진정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전체 법관들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동료 법관을 탄핵하자는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이러한 법관대표회의 의결이야말로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나쁜 사법 파동”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회가 법원에 대해 피고인을 엄벌해 달라고 의견을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원도 국회에 탄핵소추를 해달라고 의견을 낼 수 없는데, 이 같은 측면에서 법관회의 의결은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은 진보적인 성향의 판사들의 목소리가 주된 흐름을 형성했다. 이런 흐름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그 측근에 대한 단죄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이견이 적지 않다. 우선 ‘재판거래’라는 화두 자체가 현행법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대법원의 합의 과정이 수사 대상이 되고, 그 결과가 처벌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이후 ‘재판 거래’는 ‘사법 농단’으로 바뀌었다. 재판 거래보다 비난 또는 처벌의 범주가 넓게 해석될 수 있는 단어 선택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확한 처벌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이 ‘사법 농단’의 모호성을 단번에 뛰어넘는 화두가 바로 ‘법관 탄핵’이다. 실제로 이를 의결했던 법관 회의에서도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어서’라는 설명이 나왔다. 법률적 유죄가 아니더라도 추방하자는 얘기다.
김 부장판사의 글은 이런 법원의 주류 여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법원 내 보수 내지 반(反) 진보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신호탄과도 같다. 법원 내부에 응어리졌던 보수와 진보의 이념 쟁투가 본격화될 불씨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법원 내부에서 공개 서명운동이 벌어질 듯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한다. 판사들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 다른 주장으로 다툼하고, 집단 대 집단으로 대치하게 됐다는 얘기다.
생각만 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법관이 신비로울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사회와 동화되어서도 안 된다. 그게 국민의 위에서 만인의 다툼을 판가름하는 법관이 갖는 법률상 존엄이다. 그런 법관이 마치 커밍아웃하듯 진보와 보수의 성향을 드러낸다면 어떻게 되겠나. 이념적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리 내려지지 않겠나.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국민이 그렇게 보지 않겠나. 국민의 법 감정이 빚을 대혼란이다.
당장에 피고 또는 피고인들 사이에 ‘주심 판사 이념 분석’이 주요 소송 조건이 되고 있다고 한다. 주심 판사가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고, 이에 맞춰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정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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