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에티켓 수준은 그리 높게 평가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수준 이하 행동을 해 국제적 망신을 당한 사례가 종종 보도된다. 한국관광공사가 올 1~9월 해외여행을 다녀온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 에티켓 수준은 5점 만점에 2.75점으로 ‘보통 이하’로 집계됐다. 전체 응답자 중 37.4%가 ‘에티켓이 부족하다’고 응답했고, ‘에티켓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17.6%에 그쳤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여행객의 부끄러운 행동 1위는 ‘공공장소에서 시끄러움’이 차지했다. 그 다음이 ‘유흥업소 출입·성매매’, ‘현지 에티켓·매너를 인지하지 못함’, ‘개발도상국 여행 때 현지인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임’이었다. 이 밖에도 뷔페 음식이나 호텔 비품 가져가기, 차량 탑승 시 차례를 지키지 않는 행동, 현지인 또는 현지문화 비하 등이 꼽혔다.
에티켓 부족은 다른 곳에도 나타난다. 얼마전 한 일간지에 기부 물품의 상당수가 쓰레기 수준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곰팡이 같은 때가 찌든 코트, 삭아서 겉감이 가루로 부서지는 가죽 재킷, 보기도 민망한 입던 팬티, 안창이 너덜너덜한 구두 등 재활용이 불가능한 물품이 수북했다. 잡화, 주방용품, 전자제품 등도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 절반을 넘었다.
누군가는 선의로 기부했을지도 모르는 물품의 상당수는 다시 폐기물장으로 보내진다. 아름다운가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기부 물품 중 67.6%가 재사용이 불가능해 폐기 처리됐다고 한다. ‘기부를 가장한 쓰레기 투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높은 폐기율이다.
폐기물품 기부가 많은 것에 대해, 복지단체 관계자들은 기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올바른 기부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남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지 살피기보다 처치 곤란한 물건을 처리하는 차원에서 기부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버리느니 남 준다’는 식이다. 중고거래 사이트가 활성화하면서 쓸 만한 물건은 팔고, 팔지 못하는 물품은 기부하는 사례도 있다. 연말정산 시 기부금 환급 혜택이나 기업 법인세 감면을 노린 얌체 기부도 적지 않다.
이는 엄밀히 기부가 아니다. 기부의 기본은 ‘남이 사용할 수 있는가’다. 이웃에게 내가 직접 전달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인지 살펴보는 것이 기부 예절의 시작이다. 구입 가격과 상관없이 본인이 지금 쓸 수 없는 물건은 남들 역시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진정 아끼는 것을 기부할 때 상대방도 고마운 마음이 들 것이다. 온정의 손길이 절실한 연말, 기부도 에티켓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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