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지속가능한 발전과 젊어서 고생

우리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말이 1987년 세계 환경개발위원회에서 처음 사용한 이래 여러 분야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다. 위원회 보고서에서 “미래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이라고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말이 정의를 내렸다.

매우 이상적인 개념임에도 매력적이고 논리가 정연하므로 아무런 비판이나 반대 없이 수긍하면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지구 환경이 자연자원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면서 인간의 영구적 생존을 위한 대안 개념으로 주목을 받았다. 생태계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현 세대와 후세대가 같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것을 목표로 한다.

애초의 현실적인 지속가능한 개념은 어획자원의 남획을 막고자 실제로 활용된 개념이었다.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아 삶을 영위하는 어부들이 자손만대 영구히 고기를 잡을 방법은 현재의 어획할 수 있는 양을 현재 추가로 산출하는 양만큼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연간 산란량 만큼만 잡으면 지속적으로 고기자원이 고갈되지 않고 영구히 자원을 활용해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많은 어촌 마을에서 주민들이 합의하여 연간 어획량을 일정수준으로 설정해서 그 이상의 남획을 방지하도록 활용하고 있다. 현재 고기잡이 수요의 유혹을 자제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지혜로운 절제의 철학이 그 본질이다.

지속가능의 본질은 인간의 무한한 현재 욕망을 적절하게 제어하면서 궁극적으로 삶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경험적인 실체를 통해서 단기적인 최대 행복의 추구는 영구적인 삶의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몽하는 것이다. 꿈을 위해 육체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거나 절제하라고 요구하는 자기관리의 선택적 고생일 수 있다. 우리 옛말에 젊었을 때 고생은 후일에 잘 살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의미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와 맞닿은 얘기이다.

그러나 이 옛말의 의미가 지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지난해 초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일기 시작할 즈음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조선대학교 강연에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만큼 국외로 진출하고, 정 일없으면 자원봉사라도”라고 하면서 노력의 중요성을 언급한 후 많은 네티즌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극단적으로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미래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지금의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최대한 행복해야 에너지가 충전되어 미래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대응할 때는 옛말의 의미가 “사서 고생한다.”라고 축약 비아냥 된다.

현실성에 최고의 비중을 두고 이기주의에 방점을 두는 오늘날 청년들의 삶의 방식이 현인들의 삶의 철학마저 흔들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얘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나 꿈을 꾸는 대기업에 취업한 후 야근 등의 직장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2년 이내에 그만두는 청년들이 비교적 많다. 그들이 직장을 그만두면서 2년 현실이 행복하지 못해서 새로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항변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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