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민정수석의 힘

“자네는 뭘 하고 싶어.” “저는 맨날 수사만 하던 가락이 있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 자네도 청와대로 들어가야지…자네는 성격이 좋잖아. 민정수석이 딱이야. 우리 가족들도 자네가 책임을 좀 져줘야겠어. 다른 놈들은 미덥지가 않아. 대신 화평이처럼 너무 설치진 말아.”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이학봉 대공 처장의 대화다. 실세라던 허화평을 견제하려는 전두환의 수가 엿보인다.(드라마 5공화국 중에서) ▶5공화국 초 실세는 허화평, 허삼수였다. 이들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냥 보아 넘길 전두환이 아니다. 청와대 수석직에서 둘을 해고했다. 자칭 실세에 대한 전두환의 경고였다. 이후 누구도 실세를 자임하지 못했다. 단 한 명, 예외가 이학봉이다. 10ㆍ26 때 김재규를 수사한 당사자다. 이때부터 전두환은 이학봉을 곁에 뒀다. 초대 민정수석직을 맡겼다. 5년4개월 동안 유임시켰다. 민정수석이 대통령의 최고의 복심임을 보여준 사례다. ▶또 한 명의 민정수석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민정수석, 문재인이다. 노무현 변호사 시절부터 동고동락을 같이했다. 노동 운동을 할 때도 함께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문재인은 두 번이나 민정수석을 맡았다. 위기 때마다 그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이른바 ‘왕 수석’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노무현 사후에는 둘의 신뢰 관계는 계속됐다. 노무현 죽음을 발표한 것도, 훗날 노무현 재단을 꾸려 간 것도 문재인이다. ▶민정수석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민정, 공직기강, 법무, 반부패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대통령비서실 소속 민정수석비서관을 일컫는 말.’ 업무 자체에서 오는 권력이 막강하다. 권력의 중심이라 할 인사(人事)와 사정(司正)을 총괄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표현 안 될 심오한 뜻도 있다.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자’ 또는 ‘대통령이 가장 의지하는 자’다. “다른 놈들은 미덥지가 않아.” 전두환의 이 대사가 더 없는 증명이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출석시켰다. 이른바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업무 보고였다. 단단히 별렀던 야권이 총 공세에 나섰다. 그런데 얻어낸 소득이 없다. ‘헛심 공방’만 오갔다. 야당이 무기력해진 이유가 뭘까. 민정수석실의 방대한 업무영역이다. 민정, 공직기강, 법무, 반부패가 업무다. 여기에 주요 인사에 대한 인사 검증도 있다. 야당이 트집 잡는 모든 활동이 법적으로는 ‘정당한 업무 영역’이다. ▶이른바 ‘조국 청문회’가 남긴 교훈을 굳이 찾자면 이거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권한이 너무 크다. 인사는 인사부처에, 정보는 정보기관에, 수사는 수사기관에 넘길 필요가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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