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투고한 원고가 “대폭수정 후 재심사” 통고를 받았다. 그 원고는, 가슴부위의 피부에 혈관을 붙인 피판(flap)을 이용해 얼굴과 목의 결손을 재건하는 방법의 원조가 누구인지를 짚어보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이 기법은 예일대학 교수인 ‘스테판 아리안’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실은 미국에서 활동한 한국 출신 성형외과 의사 백모 교수가 처음 유명 학술지에 투고했으나 게재 불가판정을 받고 타 학술지에 싣는 중에 아리안교수의 논문이 먼저 게재된 것이었다.
심사위원의 회신에는 내가 인용하지 못한 약 100년 전 논문의 저자 이름과 고대 인도의 수술법까지 거론됐다.
“‘게재 불가 판정’ 대신 다시 쓰라고 권유합니다. 당신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당신이 다시 강조하는 그 가치를 우리가 알도록 해 주세요.” 회신을 보니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가 떠올랐다.
불멸의 음악가 장 크리스토프는 네 살부터 작곡을 했다. 궁정 악장인 할아버지가 장의 음악적 천재성을 발견하고 인정하자 그는 우쭐하게 된다. 그런 장에게 영향을 준 또 한 사람이 외삼촌 고트프리트이다.
그는 곱사등이에다 장돌뱅이로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여동생 집에 들르면 어린 장과 함께 강가에 나가 소리를 들으며 신비로운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를 들은 장은 큰 감동에 빠졌다.
느슨하고 단순하며 미숙하면서도 중후한 노래였다. 단조로운 가락으로 결코 서두름이 없었고, 긴 침묵을 느끼게 했으며 평온과 고뇌를 동시에 느끼게도 했다.
사람들이 무시하는 그의 삼촌, 고트프리트. 그러나 장은 고트의 ‘신비로운 노래’를 들은 때부터 고트를 우러러봤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삼촌에게 들려줬다.
고트: 너는 왜 이 곡을 작곡했지? 세상에는 노래가 많은데
장: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고트: 훌륭한 사람?
장: 네
고트: 무엇 때문에?
장: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려고요.
고트: 너는 단지 쓰기 위해서 쓴 거야.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고, 남에게 칭찬받으려고 쓴 거야. 너는 오만했어.
만약 그가 나의 글을 읽는다면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이런 글을 쓴 거요? 이미 발표된 글이 많은데 뭣 하러 또 쓰나요?
그 심사위원의 권유대로 수정하기 시작하자 내가 아는 사실들이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행연구를 살피지 못하고 최초라고 쓴 논문도 여러 편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나의 원고는 ‘검토논문(Review article)’ 형식으로 바뀌면서, 다이어그램과 표들이 추가됐다. 마치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일곱 가문의 계보처럼 그 수술 방법에 대한 ‘족보’를 정연하게 됐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의 원고는 게재승인을 받고 출간됐다.
그저 ‘논문을 위한 논문, 수필을 위한 수필’을 쓰는 그 우둔함을 깨우쳐 주는 멘토, 고트프리트. 그야말로 진정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글의 초점’을 유도해주는 아름다운 스승일 것이다.
이 원고는 Hwang K. A Periodical Article Reviewer as Gottfried: The Uncle of Jean-Christophe. J Craniofac Surg. 2017 Jun;28(4):858-859.을 이차출판한 것임.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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