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로베스피에르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일, 그것은 자비다. 그런 자들을 용서하는 일, 그것은 야만이다. 폭군의 잔인함은 그저 잔인함일 뿐이지만, 공화국의 잔인함은 미덕이다.” 로베스피에르의 말이다. 반혁명 분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했다. 공포정치 1년간 1만 7천 명을 단두대로 보냈다. 지방 반란 과정에서 3만 명을 학살했다. 방데의 반정부 운동 진압 때는 25만 명을 학살했다는 기록도 있다. ▶공포 정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로베스피에르 자신이 피의자가 됐다. 그가 했던 방식 그대로 그도 재판을 받았다. 사실 관계 조사도 없었고, 변론 기회도 없었다. 그의 죄를 고발한 검사는 그의 심복이던 푸키에 탕빌이었다. 사형 집행은 오히려 가혹했다. 오전에 선고받고 오후에 단두대로 갔다.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이 그의 일행을 조롱했다. “이 자식들아 무슨 말이라도 해 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칼은 떨어졌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로베스피에르를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도한 적폐청산의 칼춤을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 더 이상의 집착은 새로운 적폐로 남아 결국 자신들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가 생각난다.”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자살 직후 SNS에 남긴 글이다. 문재인 정부에 던지는 정치적 언어다. 그 말고도 여러 정치인들이 써먹는다. 굳이 꼬투리를 잡을 필요는 없다. ▶따져 볼 건 누가 로베스피에르를 처단했던 가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은 공포정치에 반발한 또 다른 혁명이었다. 나폴레옹에 이르는 변화의 한 과정이었다. 시민 혁명의 퇴보는 맞다. 하지만 구(舊) 권력의 부활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 공공의 적(敵)은 왕정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루이 16세를 향한 봉기였다. 로베스피에르 때도, 그 이후에도 이 적이 바뀐 적은 없다. 구 권력,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이후 사라졌다. ▶박정희는 5ㆍ16혁명, 전두환은 정의사회 혁명, 노태우는 보통사람 혁명, 김영삼은 문민 혁명, 김대중은 국민 혁명, 노무현은 진보 혁명, 이명박은 경제혁명, 박근혜는 보수혁명을 말했다. 대부분 로베스피에르처럼 됐다. 감옥 가거나, 비참하게 끝났다. 문재인 정부의 촛불 혁명도 그렇게 갈 수 있다. 나경원 대표 주장이 믿는 역사적 법칙이다. 다만, 그 칼자루가 누구에 주어질지는 다른 문제다. ‘부패했던’ 루이 16세는 영원히 부활하지 못했음도 새길 필요가 있다.

김종구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