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용인 수지구청 문서고에서 일제강점기인 1919년도 ‘수형(受刑)인명부’가 발견됐다. 엄밀히 말해 경기동부보훈지청과 민간단체, 학계 등으로 구성된 ‘보훈혁신자문단’이 찾아낸 것이다. 이 명부에는 머내(현 고기동)지역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일본헌병에 붙잡혀 태형을 받은 16명의 이름이 올라있다. 죄명은 ‘보안법 위반’으로 적시됐으며, 형의 명칭은 ‘태 90’, 즉결청명은 ‘용인헌병분대’로 기록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수형인명부는 형(刑)을 받은 사람의 ‘성명, 본적, 주소, 죄명, 재판 일자, 형명ㆍ형기, 처형도수(재범여부)’ 등을 담고 있어 독립운동을 입증하는 핵심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전국 시(군)·읍·면이 보존하고 있는 수형자 명부 전수조사를 벌여 독립운동과 관련해 옥고를 치른 수형자 5천323명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지 않은 수형자는 경기ㆍ인천 389명을 포함해 2천487명에 달했다. 이들은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독립유공자로 포상될 것이다.
이번 자료 조사와 분석 결과, 독립운동 관련 죄명(보안법·소요·대정<大正> 8년 제령7호·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수형자는 광주·전남지역이 1천985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기ㆍ인천은 456명이다. 경기ㆍ인천지역에서는 마을 단위 태형 처분이 많았는데 이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3·1운동 참가자들에 대해 일제 헌병대나 경찰서가 내린 즉결 처분으로 분석됐다. 남양주 진접읍 부평리 주민 116명은 태형 60대, 용인 수지 16명은 태형 90대, 평택 진위면 봉남리 주민 15명은 태형 60~90대 등에 각각 처했다. 곳곳에서 수많은 민초의 항거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수형인명부는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고 아직도 수형인의 본적지에 있는 경우가 많아 오래전부터 학계 등에서 전수조사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보훈처가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라는 국정과제 실천을 위해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수형인명부 전수조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조상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입증자료가 없어 애 태우던 후손들은 이번에 상당수가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을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는 지난해 6월부터 국내 항일학생운동 참여 학교 중 11개 학교 학적(제적)부에서 396명의 독립운동 관련 정·퇴학자를 찾아냈다. 올해도 국가기록원 소장 자료와 각급 학교에서 보관 중인 자료를 수집·분석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 곳곳에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민초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한명의 독립유공자라도 더 찾아 국가를 위한 헌신에 보답하고 희생을 기려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