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부산 ‘초원복국’과 목포의 ‘창성장’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

1992년 12월11일 이른 아침, 부산시 남구 대연동 소재 ‘초원복국’에는 부산시장, 검사장, 교육감 등 부산의 기관장들이 거의 모두 모여 눈앞에 닥쳐온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태우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김기춘 씨가 소집한 자리였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우리가 남이가”하는 것이었고, 김영삼 후보가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는 것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3파전으로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권력설계사’ 소리를 듣는 김기춘 씨가 무엇을 노리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까? 이 회식 자리에 정주영 후보 측 운동원이 전날 설치해 놓은 도청장치를 통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들이 고스란히 녹음되었고 이것은 즉시 언론사에 전달되어 신문과 TV 뉴스를 장식했다. 그 파문은 그야말로 일파만파였다. 김영삼 후보 측은 이제 선거는 끝났다며 낙심했고, ‘아파트 반값’ 공약을 내걸었던 정주영 후보 측은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결과는 김영삼 후보가 크게 승리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대구·경북의 소위 TK 측 분위기가 부산·경남의 PK에 잘 융합되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가 남이가’하는 ‘초원복국’ 사건이 엉뚱하게도 영남권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고 그것이 ‘김영삼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유권자들은 이성보다 감성에 흐른다는 것을 김기춘은 잘 알았고 그 설계는 100% 적중하고 만 것이다.

선거를 지역구도의 프레임으로 치른다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었지만 요즘 흔히 말하는 ‘정치 마케팅’은 그런 고상한 논리는 팽개치고 오직 ‘승리’만을 위해 치졸한 변칙도 불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라는 자극적인 선동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것 아닌가.

요즘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투기 의혹 등 일련의 사건들이 밤낮없이 뉴스를 점유하고 있다.

‘손혜원 뉴스’의 홍수 속에서 느끼는 것은 ‘초원복국’ 사건처럼 현란한 정치 마케팅의 위력이다.

정말 손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을 짖고 유명 소주의 작명을 한 선전의 대가답게 그로 하여 빚어진 무대를 마음대로 조명도 하고 주연배우와 의상도 바꾸고 배경음악을 내보내는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일개 목포 구도심의 ‘창성장’을 유명 관광명소로 만들기도 했다.

‘여의도 문법’쯤 집어 던지고 직설적으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의원직을 걸자고 하더니 정치 9단 소리를 듣는 박지원 의원을 향해서도 모든 걸 걸자고 도전한다. 심지어 박 의원을 향해 ‘우리나라 정치사를 오염시킨 저분과 관련해 제 이름이 나오는 것조차 불쾌하다’라며 ‘배신의 아이콘’이라고까지 몰아붙였다. 아마도 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낸 박 의원의 정치 일생에 이처럼 뼈아픈 수모를 겪기는 처음일 것이다.

결국, 박 의원을 정면으로 받아친 것은 박 의원보다 목포를 더 사랑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목포 유권자들에게 주었고,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함으로써 당은 당대로 우군으로 확보된 상태에서 언론을 비롯 모든 적대 관계자들과 자유롭게 싸울 무장을 갖추었다. 그는 200여 언론기사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투기논란이 벌어진 목포 현장, 그 낡은 건물 안에서 구름떼처럼 몰려든 기자들을 상대로 회견을 하며 ‘국가헌납’을 외친 것이다.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이런 현란한 정치 마케팅은 땅 투기 여부를 떠나 초원복국 사건처럼 얼마든지 정치무대를 조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 민주주의는 이 정치 마케팅에 취약한 약점이 있고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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