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중 3명 ‘외상 후 스트레스’… 중증 우울증 우려도
방역 비상 안성에선 살처분 소 싣고 수백m 이동 논란
안일한 대응 지적에… 市 “사체, 구제역 전파 가능성 없어”
“입과 코에서 진득한 액체를 흘리면서 눈을 감는 모습이 뇌리에 깊게 박혀 잊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부가 안성의 구제역 확산을 방지하고자 예방적 살처분에 나선 가운데 살아있는 소를 살처분하는 ‘죽음의 현장’ 관계자들 역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30일 오전 찾은 안성시 금광면의 구제역 예방적 살처분 현장.
이곳에서는 방역당국 및 축산농가 관계자 10여 명이 오후부터 곧바로 살처분에 돌입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날 살처분 작업은 사체를 땅에 묻는 매몰 방식이 아닌 랜더링 방식으로 이뤄졌다. 랜더링 방식은 소를 안락사시킨 뒤 사체를 파쇄, 고온으로 멸균 처리 후 잔존물을 퇴비로 활용하는 것이다. 주변의 지하수와 토양 등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기존의 매몰 방식과 달리 환경오염 우려가 적다.
죽은 소를 파쇄하기 위한 장비를 설치 중인 현장에서 만난 폐기물처리업체 대표 A씨는 “거의 매년 설이 가까워질 때쯤 구제역이나 AI 등 가축 전염병이 돌아 살처분을 진행하는 것 같다”며 “안성 구제역의 경우 살처분 양이 많아 2일 이상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젖소를 계속 파쇄해야 되니까 마음이 편치 않다”고 설명했다.
방역당국 관계자 B씨 역시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살처분하는 게 맞지만 안락사 될 소를 보면 안타깝다”며 “특히 애지중지 기른 소를 죽여야만 하는 농장주 모습을 보면 이게 과연 정답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가축 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살처분 참여자 4명 중 3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였고, 4명 중 1명은 중증 우울증이 우려됐다.
이런 가운데 방역당국이 지난 29일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안성시 양성면 농가의 한우 39두를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죽은 소를 트럭에 싣고 약 300m 거리를 이동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이동거리 내에 축산농가 3곳이 있어 방역당국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안성시 측은 “살처분 과정에서 트럭으로 소의 사체를 옮긴 것은 맞지만 방역을 하면서 이동했다”며 “구제역의 경우 날숨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높아 죽은 소였기에 문제 없다”고 말했다.
박석원ㆍ채태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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