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역사적인 2월이 지나가고 있다. 2월4일은 봄이 시작됐다는 입춘(立春)이었고, 2월5일은 설이었고, 2월8일은 2ㆍ8독립선언 100주년이었고, 2월19일은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다. 27~28일에는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내가 가야할 길,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찾아다니다가 문득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1515~1565)가 생각났다. 그는 선교회통(禪敎會通), 유불회통(儒佛會通), 원융무애(圓融無碍) 사상가로서,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상호 공존을 이야기한 분이다. 상호존중과 공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통 대립하는 것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共感)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서로 이해와 공감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립과 갈등은 해소되지 못하고 그 골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가 정말 문제다. 나는 그럴 때, 서로 이해하라거나 공감하라거나 존중해주라고 하기보다,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다시 보라고 하고 싶다. 봄비가 시작되는 우수(雨水) 앞에서 ‘고루 내리는 비’를 뜻하는 보우(普雨)의 시를 하나 소개하겠다.
참 오묘한 작용을 알고 싶다면(欲知眞妙用), 매일 일어나는 일이 그것이네(日用事天然).
물 받아 차를 달여 마시고(汲水烹茶飮), 자리에 올라 다리 뻗고 잠드네(登床展脚眠).
솔개가 푸른 은하수를 가르며 날고(鳶飛橫碧漢), 물고기가 유유히 깊은 연못에서 노니네(魚躍入深淵).
자연은 힘차게 약동하며 끊어짐이 없으니(潑潑無間斷), 푸른 구름도 먼 산줄기에 뭉게뭉게 일어나네(靑雲起遠嶺).
선(禪)은 분별과 조작, 시비(是非)를 넘어서되 그것에 몽매(蒙昧)하지 않은 평상심(平常心)을 갖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삶의 신비는 바로 자연스러운 일상생활 그 자체다. 목마르면 물 받아 차 달여 마시고, 졸리면 침상에 올라 다리 뻗고 누워 잠드는 것이다. 그것은 숲이 우거지고 들판이 널려 있던 시절, 눈에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의 솔개가 나는 것이고, 연못의 물고기가 유유히 노닐며 부단히 그렇지만 여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런 일상 속에서 일상이 곧 진리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4절기 중 봄이 시작되는 입춘(立春)이 지나가고 봄비가 시작되는 우수(雨水)를 기다리고 있다. 옛 시절에는 이 시기에 날도 풀리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 집집마다 각 가정에서 좋은 뜻의 글귀들을 써서 집안 천장, 대들보, 기둥 등 여기저기 붙이기도 했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분별하고 조작하고 시비를 따지지 말고 그냥 집안 어른들과 아이들이 오순도순 무슨 좋은 글귀를 써붙일 지 의논하고 각자 하나씩 써보자. 그것이 별것 아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것이 참 별것이었고, 그것들이 약동하고 있는 진리 자체였음을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100년 전의 2월8일, 100년 전의 3월1일을 기점으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소원인 독립을 위한 운동을 펼쳤고, 그것들의 고귀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당시 그들이 독립을 간절히 원하던 이유가 바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 삶과 평범한 일상 말의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김원명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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