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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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 독립선언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임시정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상해 임시정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수립한 최초의 임시정부는 1919년 2월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만든 ‘대한국민의회’다. 같은 해 3월1일 독립선언을 한 뒤 4월에 상해 임시정부와 한성 임시정부 등이 잇따라 수립되는데 대한국민의회는 이보다 두 달 먼저, 3·1 독립선언이 있기 전에 수립됐다.

그러나 지리적ㆍ정치외교적 여건 때문에 1919년 9월 상해로 임시정부가 통합되면서 대한국민의회와 연해주 독립 운동가들의 존재는 잊혀져갔다. 더욱이 광복 이후 분단의 길로 들어서면서 옛 소련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해 관심갖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거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조선인들은 19세기 후반부터 연해주(沿海州)에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연해주는 두만강 위쪽이자 시베리아 동남쪽 동해에 인접한 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가 대표적인 도시다. 일제강점기에도 이주해 살거나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들과 후손들은 ‘고려인’이라 불린다. 1937년 소련 극동지역 연해주에 살고있던 고려인 17만여명이 스탈린 명령에 따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뿌리를 잃고 강제이주 당한 그곳, 버려진 땅에서 힘겹게 살아온 고려인들은 나중에 일부는 연해주로 재이주하거나 아직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극히 일부는 뒤늦게 조국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내 거주 고려인은 8만여명으로 추산된다. 경기도 안산과 광주광역시 등이 대표적인 고려인 거주지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대한고려인협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올해 국내 거주 고려인 지원단체 ‘너머’,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국민위원회’ 등과 함께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억되지 않은 독립운동사’로 불리는 연해주 고려인들의 영웅적인 항일 투쟁을 기억하는 기념비를 연내 국내에 세우기로 한 것이다.

홍범도, 최재형, 신채호, 안중근, 이동휘, 이상설 등은 일제 강점기 연해주 등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불꽃을 피운 투사들이다. 이름 모를 수많은 독립투사들도 있다. 분단과 이념에 가려져 이들의 항일 투쟁의 역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묻혔다. 뒤늦게라도 고려인들의 영웅적인 삶을 기념하는 비를 조국 땅에 세울 수 있게 돼 무척 다행이다.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고려인의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한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에 국민 참여의 손길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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