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육체노동 가동연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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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연한(稼動年限)’은 사람이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한 연령이다.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을 해서 일을 못하게 된 경우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된다. 그 사람의 예상 수입이 언제까지 발생할지 정하는 마지막 날짜가 되는 것이다. 보통 다니고 있는 회사의 ‘정년(停年)’이 기준이 된다. 직업이 없는 상태이거나, 별도로 정년이 정해지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사고를 당할 경우엔 법원이 판결을 통해 판단을 한다. 소설가와 의사는 65세, 성직자나 변호사는 70세 등이다. 일용노동자나 일반인들의 가동연한은 60세가 기준이었다.

최근 가동연한을 60세가 아닌 65세로 봐야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989년 55세에서 60세로 높인 이후 30년 만에 바뀌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물놀이 사고로 사망한 아이의 부모가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런 판단을 내놨다. 사망한 아이가 60세가 아닌 65세까지 일한다는 전제로 배상액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1989년 전합 판결 이후 가동연한이 만 60세로 됐지만 그동안 평균 수명이 늘었고 경제 규모도 4배 이상 커졌다”며 “제반 사정이 현저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동연한을 만 60세가 아닌 65세로 보는 게 합당하다”고 했다.

우리의 사회적·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은 지난 30년간 급속하게 발전했다. 1989년 판단 당시 국민 평균 수명은 남성 67세, 여성 75.3세였으나 2017년에는 남성 79.7세, 여성 85.7세로 늘었다. 경제 규모도 커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89년 당시 6천516달러에서 2018년 3만 달러로 늘었다. 기초연금 대상도 이미 60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바뀌었다. 건설현장을 비롯한 산업현장 곳곳에는 60세 이상 인력이 적지 않다. 대법원 판결은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 소송뿐 아니라 보험금 지급액도 늘어 보험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60세 이상’으로 규정된 현행 정년에 대한 상향 논의도 이뤄질 것이다. 실제 정년 연장으로 이어질 경우 고용시장에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자 취업이 늘어 청년실업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다. 각종 연금의 수령개시 연령과 노인복지 관련 법령 및 제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사회적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 자칫 세대간ㆍ계층간 갈등이 심화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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