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자식 일자리가 집안 희망
2019년, 실업 청년 아버지들 짐으로
公 기관, ‘내 자식’ 취업 부정에 좌절
‘형’이 희망이었다. 그래서 가르쳐야 했다. 공사판 등짐을 졌다. 먹지도 못하고 아꼈다. 그렇게 벌어 학비를 댔다. 졸업한 ‘형’이 곧바로 취직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자랑거리였다. 어느 날 ‘형’이 황소를 끌고 왔다. 20만원 줬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이 집 부자 됐네’라며 축하했다. 엄마가 곳간을 털었다. 정부미 쌀로 쑥떡을 빚었다. 막걸리도 실어왔다. 밤새도록 잔치를 했다. 가난한 아버지엔 세상 행복한 날이었다.
1970년대. 그런 ‘형’들이 많았다. 졸업만 하면 됐다. 그리곤 집안을 건사했다. 기반은 일자리였다. 직장이 넘쳤다. 3,4차 경제개발계획 때다. 배를 만드는 공장이 선다. 사람을 뽑는다. 자동차 만드는 공장도 선다. 사람을 뽑는다. TV 만드는 공장도 선다. 사람을 뽑는다. 수많은 ‘형’들이 그렇게 취직했다. 수출이 100억 불에 갔다. 소득도 1천 불에 갔다. 1977년 결과다. 그 시절 아버지의 고생은 거기까지였다. ‘형’ 졸업이 끝이었다.
2019년. 그 시절 ‘형’은 없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 대학원을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청년 실업률 9.8%라고 한다. 청년들이 턱없다고 비웃는다. 그래서 2015년부터 체감 실업률이란 걸 뽑았다. 지난해 체감 청년실업률이 22.8%다. 더는 집안을 챙길 ‘형’이 없다. 자기 살길도 막막하다. 이런 논문도 등장했다. ‘1978년 이후 출생자들이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되어 가고 있다’. ‘형’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다. 절망에 가깝다.
그 시절 ‘아버지’도 없다. 자식 책임이 끝없어졌다. 졸업이 아니라 취업까지다. 술 마시던 ‘석 원장’이 한숨을 쉰다. “요즘은 애 취직까지가 아버지 책임이여.” 맞는 소리다. 청년 실업률 22.8%에 사는 아버지들의 현실이다. 하루하루를 아들보다 가슴 졸인다. 아들 전화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힘없이 끊는 아들에게 묻지도 못한다. 차라리 대신 방에 갇혀 지내고 싶다. 그렇다고 뭘 도와줄 수 있겠나. 그래서 더 억장이 더 무너진다.
어떤 아버지도 그랬을 거다. 6층 아래로 몸을 던졌다. 유족으로 아들 셋이 남았다. 애지중지 키웠을 아이들이다. 그 아들 셋이 모두 취직을 못했다. 경찰은 ‘아이들 취직 문제로 불화가 있었고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 같다’고 잠정 결론 냈다. 생각하지 않은 종말이었을 게다. 아들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을 게다. 그리고 마지막엔 스스로 자책했을 게다. ‘결국 나의 무능’이라 결론 냈을 게다. 세상 아버지들이 다 그렇다.
이런 아버지들을 더 화나게 한다. 공공기관이 나쁜 짓을 했다. 직원이 자기 자식을 취직시켰다. 응모 자격을 아들에 맞췄다. 면접관에 동료 직원을 넣었다. 그렇게 해서 공채에 합격시켰다. 도내 여러 공공기관이 이런 부정을 저질렀다. ‘자기 자녀’ 또는 ‘자기와 친한 누군가의 자녀’를 챙기려 한 짓이다. 이 반칙 때문에 누군가는 떨어졌다. 그리고 어떤 아버지는 좌절했다. 공공기관이라 더 화가 난다. 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형’들이 있던 그 시절. 하루하루는 팍팍했다. 미끄덩거리는 보리밥이 지겨웠다. 간장 저린 상추에 신물이 났다. 그런데도 많이 웃었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진다고 믿어서였다. 그때보다 윤택해진 지금이다. 그런데 견디기는 더 힘들다.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져서다. 그리고 이런 좌절이 저런 사람들 때문에 또 한 번 증명된다. 사회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형’의 기회를 박탈하고, ‘아버지’의 희망을 빼앗는 사람들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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