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道 대표 자유공원 회의… 임정 기폭제”
“개항을 통해 국제도시 성격을 띠고 있던 인천은 그 의미와 상징성 때문에 3.1 운동 이후 13도 대표가 인천 자유공원(당시 만국공원)에서 회의를 개최키로 했고, 결과적으로 한성 임시정부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강덕우(63) 개항장연구소 대표는 인천지역 3·1 운동 이후 지역에서 독립운동가 활동과 백범 김구 선생과 관련 인물들의 발자취를 연구하고 있다.
강 대표는 “개항 당시 일본, 미국, 영국 등 열강의 조계지가 있었던 자유공원에서 민족의 자유 독립을 외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인천에서 13도 대표의 발자취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은 일본에 의해 1883년 1월1일 강제 개항을 당한 슬픈 역사가 있다”며 “당연히 일본의 영향력이 인천 내에서는 막강했고 3.1운동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인천 총 인구의 절반가량은 일본인이었지만 학생들이 먼저 떨쳐 일어났다.
강 대표는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3.1운동은 인천 자유공원에서 수많은 조선인이 모여 만세 운동을 벌이게 됐다”며 “이는 홍진을 비롯한 13도 대표가 민족적 운동인 3.1운동의 힘을 모으고자 자유공원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4월 2일 자유공원 13도 대표 회의는 같은 달 23일 발족한 한성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강 대표는 “김구 선생이 인천에서 옥살이하는 동안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옥바라지와 이를 돕고자 나선 조선인에 대한 연구도 준비 중”이라며 “유완무 독립지사는 김구 선생을 탈옥시키고자 조선인들을 규합하고, 계획까지 세웠다”고 말했다.
주재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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