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ㆍ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은 28일이다. 한반도 정세가 한 치 앞도 모를 격랑에 빠진 날이다. 바로 다음날 3ㆍ1절 10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전 국민이 문재인 대통령의 입을 주시했다. 급변한 정세 속에 던져질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메시지여서다. 여전히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지와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별히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두 사업의 성공을 위해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북미 회담에 앞서 두 사업 전망은 희망적이었다. 특히 금강산 관광 재개는 일본과 미국의 언론까지 ‘미국이 양보할 것’이라는 전망을 했었다. 그런 만큼 가장 큰 실망을 준 것도 이 부분이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나 금강산 관광 관련 업계가 받은 충격이 크다. 두 사업과 관련된 기업의 주가도 15~25%까지 폭락했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런 상황을 보듬으려는 취지로 보인다. 대통령이 해야 할 당연한 배려라고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말한 ‘미국과의 협의’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개성공단ㆍ금강산 사업의 면제나 예외를 부탁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유엔 제재는 그대로 유지되면서도 북한에 주는 경제적 상응 조치는 클 수 있다. 제3차 북미 회담 전에도 우리는 이런 의사를 분명히 피력됐었다. 지난달 19일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경협은 우리가 떠맡겠다’고 제안했었다. 큰 틀의 타협에 앞서 작은 책임을 떠안겠다는 의지였다.
북미 간 협상은 생각보다 큰 셈법이었다. 미국의 요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였다.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비밀 핵시설 신고 카드를 더했다. 북한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북한의 요구도 예상보다 컸다. 유엔 제재 결의 11건 중 5건의 해제 요구였다. 자원 수출, 석탄 수출, 유류 수입, 노동자 송출 등의 해제다. 미국은 사실상의 전면 해제라며 거부했다. 양국이 제시한 카드가 모두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우리가 허물기에 벅찬 벽이다. 이 시점에서 개성공단ㆍ금강산을 말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이미 ‘유엔 제재 5건 해제’를 세계인 앞에 던진 북한이다. 두 사업만을 덥석 받겠다며 절충에 나설지 의문이다. 미국 역시 ‘영변 외 비밀 핵시설’을 공개한 셈이 됐다. 여기에 ‘노딜’에 고무되기까지 한 미국 내 정치권이 두 사업을 묵인할지도 의문이다. 불가능하다고 예단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전보다 어려워졌음은 분명한 현실이다.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개성공단ㆍ금강산 기업이다. 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금방이라도 재개될 것처럼 말하던 지난 1년이었다. 돌아보면 이뤄진 결실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상황은 더 나쁜 지경으로 왔다. 경협의 전제조건이라 할 북미 정상회담까지 결렬됐다. 장밋빛 미래를 말할 때가 아니다. 안 그래도 지치고 힘든 기업인들이다. 이들을 향한 또 한 번의 희망 고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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