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공기관 이전할 때는 서두르던 정부 / 이전부지 매각·활용에는 하세월이다

공공기관 이전에는 전제된 약속이 존재한다. 신속한 이전과 정착 지원이 있고, 부지 활용과 대책 마련이 있다. 반드시 병행돼야 할 동시 이행의 성격을 갖고 있다. 앞의 것은 새로운 이전지역에 대한 약속이고, 뒤의 것은 이전하고 남은 지역에 대한 약속이다. 앞의 것은 지방 주민에 대한 약속이고, 뒤의 것은 수도권 주민에 대한 약속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10년, 앞의 것은 지켜졌는데 뒤의 것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안산시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지가 있다. 2012년부터 42차례나 매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지금은 9만㎡의 방대한 부지를 사람 한두 명이 지키고 있다. 주변의 고잔 신도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성남시에 LH 사옥 부지도 있다. 2010년부터 매각을 시도했지만 팔리지 않는다. 지금처럼 방치된 게 벌써 10년째다. 용인시에는 한국전력기술 부지가 있다. 가격을 떨어뜨리며 계속 내놓고 있지만 팔리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의 무관심이 원인으로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건물 용도가 연구시설이다. 도심 한복판에 연구시설을 매입할 민간자본이 있을 리 없다. 용도를 바꿔주는 적극적 노력이 없다. LH 부지는 팔리지도 않는데 땅값을 올리고 있다. 신분당선 연장선이 개통됐다며 3천500억원이던 땅값이 4천250억원까지 올랐다. 한국전력기술 부지도 업무시설 용도를 고집하는 것이 매각 실패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경기도에서 빠져나간 공공기관이 60개다. 일부 부지는 민간 매각에 성공했다.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상 대부분 부지가 가진 한계가 있다. 민간 기업이 경제성을 높이려면 용도 변경, 건축여건 완화 등이 필요하다. 여기서 애를 먹는 기업들이 많다. 정부 또는 지자체 차원의 협조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부지를 사 아파트를 지으려던 한 기업도 난항에 부딪혔다. 최근에는 부지를 다시 파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이런 전례들이 부지 매각을 더 어렵게 한다. ‘정부 뜻을 따라 사들여봤댔자 개발 과정에 전혀 도움이 없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의 지적도 궤를 같이한다. 부지를 산 기업에 경제성을 높여주는 후속 조처가 따르지 않으면 팔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한다. 어차피 이전해 간 공공기관이다. 되돌릴 수 없고 되돌려서도 안 된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지방과 수도권 모두를 위한 후속 조치를 해주는 것이다.

한국해양기술원의 사정이 답답하다. “사옥 매각이 실패한 후 이전 비용 마련을 위해 금융권에 900억원 가량을 차입했는데, 지난 3년간 이자만 43억원에 달한다”고 밝힌다. 이러면 안 된다. 부지 매각이 돼야 이전해 간 지역도 살고 이전 해준 지역도 산다. 공공기관 이전부지 매각은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출발이자 끝이다. 정부의 구체적 노력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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