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공기질도 빈부 격차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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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2017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상 인구의 92%가 오염되거나 위험한 수준의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 70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WHO가 지역별 대기오염의 시간적 변화를 비교한 결과, 2010년부터 2016년 사이 부유한 국가의 대도시 상황은 개선됐다. 미주대륙의 도시 57% 이상, 유럽 도시의 61% 이상은 대기 중 먼지 농도가 감소했다. 반면 빈곤 국가의 공기 질은 크게 나빠졌다. 델리(인도)와 카이로(이집트)는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해 먼지 농도가 WHO 기준치의 10배를 넘었다. 다카(방글라데시), 뭄바이(인도), 베이징(중국) 등은 WHO 기준치의 5배를 넘었다.

빈국(貧國)의 먼지 농도가 높은 것은 가정에서 난방이나 요리를 할 때 석탄, 나무, 등유 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전했다. 차량, 공장, 화목 취사 등에서 발생하는 대기 오염물질로 심장마비와 뇌졸중 사망률이 25%, 폐암은 29%,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43%에 이른다고 했다. WHO는 빈부 격차에 따른 공기질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그 피해를 우려했다.

빈부 격차에 따른 공기 질은 요즘 대한민국에서도 체감하게 된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연일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빈곤층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미세먼지 경보를 내릴 때마다 ‘어린이나 노약자는 실외 활동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고하지만 마스크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보통 사람들은 미세먼지가 차단되는 고기능성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저소득층ㆍ취약계층은 일회용 마스크를 살 여력이 없어 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숨 쉬는데도 빈부 차가 난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젠 공기청정기가 필수 가전이 됐다. 지난주 극심한 미세먼지에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마스크도 제대로 착용하지 못하는 빈곤층에서 공기청정기는 엄두도 못낸다.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미세먼지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정부가 마스크라도 무료로 보급해줘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마스크 가격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1회용 마스크는 최소 1천원, 3~4인 가족이면 한 달 10만원은 든다. 밸브가 달린 마스크는 개당 2천500원 정도다. 최근엔 유명 연예인 모델을 내세워 디자인을 강조한 마스크도 나왔다.

공기 질의 격차는 장기적으로 건강 격차로 이어지게 된다. 미세먼지 노출 양에 따라 폐암을 비롯해 각종 건강 악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미세먼지를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 저소득층과 어린이만이라도 마스크를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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