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분노사회와 이성의 역할

현대 한국사회에는 분노가 차고 넘친다.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는 특별한 종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 자신조차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 할 수 있는 대중음식점이나 유흥점이나 또는 길거리 등에서 잔뜩 화가 나서 얼굴을 찌푸리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발견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로 인한 피해의식과 상대적 박탈감이 극단적으로 흘러가면서 타자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분노의 치유를 위해서는 분노의 원인과 대상을 스스로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먼저 분노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마땅히 분노할만한 일인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의 원인으로 적절한 근거나 이유 없이 부당하게 당한 경멸이나 모욕 및 무시 등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분노의 대상에 대해 마땅히 분노할만한 대상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분노의 주체는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이나 호의를 베풀었는데 보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한다. 나아가 우리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이나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분노한다. 분노의 대상을 적절하게 판단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에게도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심지어 불특정한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분노를 표출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폭력 행위나 범죄를 야기하기도 한다.

분노가 이성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 때문에 트로이전쟁 9년 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했다. 그러나 아가멤논을 치기 위해 칼을 뽑아들기 직전에 이성의 힘을 발휘하여 분노를 억누르고 그리스 진영에 닥칠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는 분노를 극복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수많은 그리스군사들을 죽음의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나아가 분노는 ‘복수’와 원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에서 이아손이 아르고호의 모험을 통해 황금양피를 찾아 귀향하는데 너무 많은 희생을 했던 메데이아는 남편이 자신을 배신하고 코린토스 공주와 결혼을 추진하자 배신감에 치를 떨며 분노한다. 그녀는 분노로 인해 미칠 듯했지만 냉정하게 이아손이 가장 큰 불행의 늪에 빠지도록 그의 자식까지 살해한다. 메데이아는 분노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이성을 도구로 사용하여 끔찍한 복수를 한 것이다. 분노는 일단 일어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분노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까? 세네카는 분노를 아예 악덕으로 규정한다. 분노는 이성을 내동댕이치며 광포하고 역병처럼 파괴적이다. 그래서 스스로 끊임없이 감시하여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에 중용의 원리를 적용하여 적절한 분노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나치게 분노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너무 분노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한다. 그렇지만 분노를 적절하게 하기 위해선 우리의 이성을 매우 탁월하게 발휘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일으키는 분노의 다양한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분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타자와 공감하며 배려하는 능력을 함양시킴으로써 더욱 강화될 수 있다. 분노의 시대에 이성은 더욱 자신의 역할을 해야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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