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대원군, ‘대동여지도’에 놀란 것은…

우리나라 국토를 10리 단위로 표시 하며 상세한 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그가 중인의 신분으로 나라의 도움도 없이 백두산을 여덟 번이나 오르는 등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지도를 작성했다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 온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사실 김정호는 1861년(철종12년) ‘대동여지도’를 많은 고초 끝에 간행 했고 1864년 고종1년 대원군의 집권이 시작될 즈음 재간행을 했다.

그런데 대원군이 이 지도를 들여다보고는 그 정확하고 상세한 내용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김정호를 체포하고 ‘이적행위’로 처형을 했다는 것이다. 이 지도가 일본 같은 적국의 손에 들어가면 침략의 길잡이가 된다는 것.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은 요즘 들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학계에서 대두 되기도 한다. 일본 학자들이 조선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원군은 나름대로 국가안보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쇄국정책도 그런 것이었고, 특히 임진왜란 때 고니시의 왜병이 부산진에 상륙하고도 서울을 점령하는데 20일 이나 걸린 것은 서울로 가는 길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김정호의 정확한 지도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무렵 조선의 지방도로는 도로라고 할 것도 없이 엉망이었고 좁아 터져서 병사들이 행군을 해도 두 줄로 걷질 못하고 한 줄로 걸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을 다녀간 서양인들은 조선 도로가 이렇게 엉망으로 방치된 것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졌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외국의 침입로를 차단하는 것을 꼽기도 했다.

도로를 제대로 만들지 않은 것은 그것이 외국침략을 막기 위한 한 방안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외침을 당하면서 살았던 우리에게는 도로 하나에까지 국가안보의 개념이 배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라를 지키려 했던 조상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질 뿐이다.

어디 그 뿐인가? 착한 백성들은 임진왜란 때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가자 그 행렬에 돌을 던져 분노를 표현하고 궁궐에 불을 질렸다.

그러나 나라가 적에게 밟히자 의병을 일으켜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리는 희생을 보여 줬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모든 가치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요즘 안보에 대한 미심쩍은 생각이 자꾸만 커지는 것은 왜일까? 새 한미연합훈련으로 실시한 ‘19-1 동맹’훈련이 지난 12일 1주간의 짧은 일정으로 끝냈다.

북한이 제일 무서워 한다는 B2전략폭격기를 비롯 핵항공모함등 전략자산의 움직임도 없이 훈련은 조용히 시뮬레이션으로만 끝내고 말았다.

그동안의 을지프리덤, 키졸브 등 한미연합훈련의 3대 축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고 이제는 컴퓨터에 의한 ‘워게임’만 하게 된 것.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해 체니 전 미 부통령은 ‘그가 뉴욕에서 부동산 거래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지만 그 ‘거래’가 우리 한국에는 치명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잇따른 한미훈련의 취소, 또는 축소는 공허감을 주는게 사실이다. 이런 것이 미군 철수나 감축으로 이어 지지는 않을 까도 걱정이다.

거기에다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의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한 발언과 안보의 긴장 끈을 느슨하게 하는 일련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다른 정책은 실패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국가안보는 한번만 실패해도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런 우려를 더욱 압박해 온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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