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 일본 전범기업 제품 표시 조례안’이 발의됐다. 일본 전범 기업이 만든 제품에 인식표를 부착하자는 내용이다. 경기도의회 황대호 의원이 추진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전범기업에 대해 자라나는 학생들이 똑똑히 기억하도록 하는 역사 교육의 일환이다. 일본 제품을 불매운동한다거나 한일 간 갈등을 조장하는 조례안으로 비치고 왜곡될 소지가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안타깝게도 그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경기도교육청이 수용 불가 입장을 냈다. 입장을 설명하는 근거도 조목조목 밝혔다. 전범기업에 대한 불명확성 및 관리 주체 문제, 전범기업 및 생산제품에 대한 중앙정부의 명확한 실태조사 자료 부재, 소제기 문제, 관계법령 부재 등이다. 특히 우려를 표한 것은 한일관계다. “한일 외교 관계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재정 교육감이 기자들 앞에서 직접 말했다.
우리는 교육청 입장에 동의한다. 안 그래도 경제보복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일본이다. 지난해 11월 6일 우리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정확히는 분쟁해결절차상의 양자협의 요청이다. 일본이 문제 삼은 분야는 조선산업이다. 우리 정부가 WTO 보조금 협정을 위반해 조선산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책임 판결이 내려진 지 일주일만이었다. 누가 봐도 보복이다.
더 걱정은 이런 보복이 우리 반도체를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장비ㆍ소재 등 부품의 한국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는 으름장이 계속된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심장이다. 수출을 견인하는 대체불가 산업이다. 업계의 걱정이 여간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경기도의회 조례안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 측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라며 달려들 게 뻔하다.
실제로 그렇다. 아이들의 소비는 획일적인 경향을 보인다. 2017년 말 등장한 긴 외투(일명 롱 패딩)가 그랬다. 평창 동계 올림픽 선수단복에서 착안됐다. 학생들 사이에 급격히 파고들었다. 동시에 반작용이 일어났다. N사의 패딩이 사라졌다. 주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아이들 소비 세계다. 그 아이들이 쓸 제품에 ‘전범기업 제품’이라는 딱지를 부치자는 것이다. 그걸 들고 다닐 간 큰 아이가 있겠나. 의도했건 안했건 불매운동이다.
국제법 저촉 여부를 따져야 하고, 통상 관련 조약 위반 여부를 봐야 하고, 한일 산업 분포를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총괄적으로 분석해 국익의 득실 계산서도 뽑아봐야 한다. 모두 국가가 내릴 판단이다. 지방의회가 다룰 문제가 아니다. 일제 잔재 없앤다며 교가 바꾸고, 도로명 바꾸고, 쇠말뚝 뽑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황 의원이나 도의회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고민이 필요함을 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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