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이 박탈됐다. 27일 주총에서 이사 재선임에 실패했다. 대한항공 사규에 이사회 의결사항으로 규정된 안건은 주주총회 소집 결정, 대표이사 선임 및 해임, 신주 및 사채 발행, 400억 원 이상의 신규 투자 및 지출, 500억 원 이상의 구매 업체 변경 및 신규 업체 선정 등이다. 사내 이사직을 상실한 조 회장은 이런 안건 결정에 참여할 수 없으며 의결권도 행사할 수 없다. 사실상 회사 경영에서 배제된 것을 의미한다.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은 대한항공 전체 지분의 33.35%다. 외국인 주주 지분이 20.50%, 국민연금 지분이 11.56%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연임 반대 결정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었다. 전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선임 반대를 공식 결정했다. 여기에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 회원들이 오전부터 회의장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회의장을 밖 시민단체 목소리와 회의장을 안 국민연금이 성사시킨 대주주 퇴출이다.
주총에서는 대한항공의 경영부실도 지적됐다. 부실 계열사인 한진해운을 지원했다가 8천억 원 넘는 손실을 본 책임 추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조 회장 일가의 갑질이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과 부인과 딸들의 비상식적인 모습에 국민이 분노했다. 여기에 조 회장 일가의 탈불법 의혹까지 불거졌다. 많은 국민이 이번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이런 제가부실(齊家不實)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조 회장 스스로 자초한 불행이다.
다만, 국민연금의 이번 주권 행사를 소름 돋게 보는 시각이 있다. 대기업 총수를 일거에 퇴출시킨 이번 결정이 옳았느냐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불거진 조 회장 일가의 갑질은 대부분 국민 정서의 문제다. 일부 현행법 위반 혐의에 대한 최종 판결은 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앞장서서 경영적 사형을 선고했다. 다른 기업에도 언제든 적용될 수 있는 ‘국민연금 관치’의 힘이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 사회주의’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한다.
국민연금의 부실 투자 책임은 누가 따질 것인지도 문제다. 이번 조 회장 퇴출의 한 원인은 회사에 끼친 손해다. 그런 면에서 국민연금도 자유롭지 않다. 해마다 10조 안팎의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올해는 이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같은 논리라면 국민연금에서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국민에 끼친 천문학적 손해에는 책임 안 지고 대기업 총수 날리는 권력만 휘두르는 괴 집단이다.
결국, 관치에의 걱정이다. 대한항공 경영 선택권은 이제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 그런데 주권의 실질적 행사자가 누구인지 봐야 한다. 국민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 이사를 선임하고 해임하는 실질적 권한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결국, 권력 아닌가. 정권 아닌가. 신(新) 관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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