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두드러진 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수원은 여성의 독립운동이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고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항쟁으로는 기생들이 독자적이고 조직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했던 수원예기조합의 투쟁과 삼일여학교 출신운동가들의 민족운동, 이선경의 사회주의 여성 혁명 등이 있다.
수원에서 다양한 여성들의 민족운동이 가능했던 데에는 당시 삼일여학교와 같은 근대교육기관을 통해 여성들이 전통시대의 틀을 깨고 근대적 신여성으로 성장하며 자주독립에 대한 참여의식을 고취한 데 기반하고 있다. 삼일여학교는 1902년 6월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튼 선교사가 여성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설립한 학교로 당시 일제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민족교육을 유지할 수 있었던 수원 지역에서 중심적인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삼일여학교는 지금의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로 이 학교를 졸업한 나는 굉장한 자긍심을 느끼곤 한다.
삼일여학교 1회 졸업생으로 가장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 인물은 나혜석이다.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 여성해방운동가, 독립운동가와 같은 다양한 수식어가 나타내듯 나혜석은 유학생활을 통해 근대지식과 문화를 경험해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남성 중심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여권신장에 노력하는 한편 1919년 일본 유학 시절 3.1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3월 25일 이화학당 학생 만세 사건에 깊이 관여함으로써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한 1회 졸업생이자 이후 삼일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차인재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차인재는 구국민단에 참여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보낸 독립신문·대한민보 등의 독립사상에 관한 신문을 배포하는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후 1920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대한인국민회, 대한여자애국단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나혜석, 차인재와 함께 졸업한 박충애는 수원 최초의 전도부인인 할머니 김세라와 삼일여학교 초창기 교사로 재직한 어머니 김몌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삼일여학교를 거쳐 이화학당을 진학했고 3ㆍ1만세운동이 계획되던 당시에는 평양에서 조직된 국민회와 평양부인회에 참여하며 독립운동 자금조달, 태극기 및 독립창가 작성 등에 직접 참여했다.
‘수원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이선경과 함께 비밀 결사조직인 혈복단(血復團)을 구국민단(求國民團)으로 개칭하고 활동했던 임순남, 최문순도 삼일여학교 출신의 민족운동가이다. 구국민단은 경술국치에 반대해 독립 국가를 조직할 것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감돼 있는 사람의 가족을 구조할 것 등의 목표를 세우고, 매주 금요일 삼일학교에서 회합을 갖기도 했다. 구국민단의 활동은 1920년 8월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이들이 독립운동에 주도적으로 가담하고 근대적 엘리트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구습에 얽매여 살던 여성들에게 평등사상과 민족의식을 교육했던 삼일여학교의 체험이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들은 삼일여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이화여자보통학교, 일본 유학 등에서 활동하며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삼일여학교는 선교 목적을 위해 설립한 학교였기 때문에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수원 여성들의 사회활동이나 민족운동 참여를 견인하는 통로 역할을 담당하며 민족운동을 위한 기지로 삼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여성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을 드러내며 유학을 가거나 계몽활동을 적극 펼치며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의 제국주의 체제와 여전히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고가 만연했던 당시에 여성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단체를 결성해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데에는 더 많은 위협과 고통에 맞선 투쟁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활동했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나 고증은 여전히 부족하다. 아직도 대중들은 많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여성은 유관순 열사 정도만 기억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이기에 또는 현실에 부딪혀 제한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가 소홀히 되어 오지 않았나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올해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고 있다. 순국선열들이 남긴 소중한 100년의 시간을 누리는 동안 우리는 이를 기억하고자 어떤 노력과 예우를 했던가. 무관심 속에 가려져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재평가가 시급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100년을 나아가며 적어도 우리 지역에서 ‘독립’이란 열망 앞에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던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고 이를 대중 속으로 확산하는 의미있는 계기로 삼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조명자 수원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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