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면서 겪는 모든 일상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그 돌파구로 ‘대리만족’을 선택한다. 그리고 영화의 장르는 ‘대리만족’의 스펙트럼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영화의 장르는 시대상의 현주소와 궤를 같이 해 ‘성공’과 ‘실패’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현재가 너무 즐겁고, 행복하고, 더할 나위 없이 좋다면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그 빈틈을 찾아 들어가 하나의 ‘신드롬(syndrome)’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너무 답답하고, 무엇을 해도 짜증나고, 불편하다면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 유머를 곁들인 코믹 장르의 영화를 찾는다. ‘극한직업’처럼.
▶얼마 전 ‘스윙키즈’라는 영화를 봤다. 6ㆍ25전쟁 당시 거제도에 있던 북한,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작은 팩트(fact)에 픽션(fiction)을 입힌 영화다. 젊은 북한군 포로와 미군이 함께 ‘탭댄스’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만, 결국 이데올로기 앞에서 그 꿈이 무너지는 비극이다. 너무나도 몰입해서 영화를 봤고,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함정은 그 영화가 상업적으로 폭망했다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비극이 그 영화보다 더 비극적이라고 생각해서 외면한 게 아닐까라고 혼자 읊조려 본다.
▶반면 ‘이것은 통닭인가, 왕갈비인가’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누적관객수 1천6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은 대한민국 영화 흥행사에 한 획을 그었다. 경찰과 범죄 집단이라는 아주 명확한 대상과 스토리에 유머를 가미한 대표적인 코미디 장르의 영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그 영화에 열광하고, 덤으로 수원의 치킨거리는 닭이 없어 못 팔 정도로 대박행진을 이어가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웃을 일이 없는 인간 군상의 소구를 제대로 건드렸다고 해야 할까.
▶경제는 회생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미세먼지는 사람들의 짜증 속 깊이 파고 들어 심신을 지치게 하고 있다. 어쩌면 웃을 일 없는 이들이 ‘극한직업’ 흥행대박의 코어(core)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그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웃을 일이 많아 ‘스윙키즈’처럼 작품성 있는 영화도 흥행에 성공하는 살맛나는 세상에 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김규태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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