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혁명의 무기, 그 ‘깨끗한 척’의 역습

평생 과학 속에 살았던 조동호 후보
靑, 부실학회참가로 지명철회 ‘수모’
정부, 학자 1천300명 징계의 부메랑

이만한 이력도 없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카이스트에서 공부했다. 이 시대 최첨단 분야라는 통신 공학이다. 학위도 2년만에 석사, 4년만에 박사를 했다. 이후 줄곧 젊은 학자들을 가르쳤다. 인생이 곧 과학이고, 기술이고, 정보통신이다. 여기에 조직을 건사해 본 경험까지 있다. 한국통신학회의 회장을 맡았던 이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더 없는 조건이다. 대통령이 그를 장관에 지명했다. 조동호 교수다.

청문회는 늘 그랬다. 먼지 하나까지 털었다. 과학과 무관한 부(富)를 파헤쳤다. 세(貰) 수입을 따져 물었다. 많이 올린 게 나왔다. 어디에 썼냐고 캤다. 아들 유학비에 보탰다고 했다. 하필 아들이 탄 승용차가 포르셰였다. 야당의 스토리는 완성됐다. ‘세입자 등쳐서 아들 유학비 내주고 포르셰까지 사줬다!’ 비판 여론이 꽤 됐다. 하지만 낙마 사유까진 아닌듯했다. 청와대도 ‘포르셰 가격’까지 대며 옹호했다. 그러다 갑자기 바뀌었다.

지명을 철회한 청와대가 사유를 밝혔다. “해외 부실 학회에 참석했던 사실이 확인됐더라면 후보에서 제외됐을 것이다.” 부실학회 참가 전력이 문제였다. 2017년 학회를 다녀왔다. 제9차 월드바이오마커 콩그레스다. 주관한 단체가 오믹스(OMICSㆍ인도)다. 미국이 규정한 부실학술단체다. 일명 해적학술 단체다. 여기에 한번 다녀왔고 이 이력이 사달이었다. 학계 일부의 이견이 있다. 과기부 장관 못할 사유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청와대도 아쉬운 듯했다. “(부실학회인지)모르고 간 학자들도 꽤 있다”며 두둔했다. 국민소통수석의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 유독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 또는 연구기관의 학자 1천300명이다. 얼마 전 똑같은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오믹스와 와셋(WASETㆍ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ㆍ터키) 학회에 참가했다는 죄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부실학회로 찍자, 우리 교육부가 덩달아 칼을 뺐다. 그때 징계 받은 1천300명이다.

이들이 충분히 분노할 이유가 있다. 윤도한 수석의 해명-‘모르고 간 학자들도 꽤 있다’-은 바로 그때 이들의 하소연이었다. 애초에 문제 있는 징계였다. 지구 상에 부실학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와셋과 오믹스만 꼭 집었다. 규정도 모호하다. 국제 학술대회 인정 조건이 있다. 4개국 이상 참여, 구두발표 논문 20건 이상이다. 두 기관의 학술대회 상당수가 이 조건을 충족한다. 당연히 억울할만 하다. 많은 학자들이 ‘몰랐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냉정했다. 참석자는 무조건 징계했다. 기준도 획일적이었다. 참석 횟수로만 갈랐다. 1회 참가 주의ㆍ경고, 2~6회 참가 경징계, 7회 이상 참가 중징계였다. 과학계에 대입한 음주운전단속식 분류였다. 대학들도 탄원했다. ‘학자의 인생이 달린 징계다. 사안별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막무가내였다. ‘자정을 위해 노력하는 계기로 삼으라’며 밀어붙였다. 그야말로 과학계에 들이댄 적폐청산의 칼날이었다.

그때의 ‘깨끗한 척’이 부메랑이 됐다. 청와대로 날아들었다. ‘후보자가 다녀온 지 몰랐다’고 청와대가 변명하자, ‘우리 1,300명은 그토록 샅샅이 뒤지더니’라며 학자들이 비난했다. ‘모르고 간 학자도 있다’고 청와대가 두둔하자, ‘우리도 모르고 갔는데 징계하지 않았느냐’며 학자들이 비난했다. 결국, 청와대가 고개를 숙였다. 지명 철회라는 수모를 당했다. 석 달 전만 해도 서슬 퍼렇던 정부였는데, ‘자정하라’던 훈육이 민망해졌다.

혁명이란 게 대체로 그렇다. 시작하는 무기는 선명성이다. 쇄신과 청산을 문패로 내건다. 그러다가 그 늪에 스스로 빠진다. 문재인 정부도 촛불혁명 정부다. 선명성을 무기로 삼았다. 쇄신과 청산을 문패로 달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그 늪에 빠져들었다. 지명 철회, 자진 사퇴로 얼룩진 이번 청문회도 그 중 하나다. 학자 1천300명을 징계하라고 몰고, 자정(自淨)하라고 몰더니, 바로 그 기준에 걸려 ‘괜찮은 인재’를 버리고 말았다.

-‘깨끗한 척’의 끝은 그 ‘깨끗한 척’의 역습이다- 이 평범한 진리의 예(例)가 문재인 정부 곳곳에서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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