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국과 일본이 왕실의 경사로 들떠 있다.
영국은 해리 왕자와 메건부부 사이에서 태어날 아기 때문이고, 일본의 왕실은 5월1일 나루 히토(德仁)의 즉위식 때문이다.
영국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애정은 특별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출산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메건에 대한 뉴스가 매일 끊이질 않는 것도 그렇다. 아기가 출산하면 영국은 전국이 경축 분위기로 빠져 들고 각종 기념품이 백화점 진열대를 채울 것이다.
일본은 이미 ‘레이와(令和)라는 새 왕의 연호를 선포했고 5월1일 트럼프 미대통령을 비롯 세계 주요 국가의 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을 거행한다.
일본은 나루히토 즉위를 계기로 새로운 국가 도약을 다짐하고 있고 그래서 ‘제2의 유신’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일본의 군국화를 의미하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쨌든 일본 역시 영국 못지 않게 그들 왕실에 대한 애착이 크다.
사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 일본의 ‘천황제’ 유지를 전제조건으로 항복했고 전범재판에서도 제외시킨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또한 일본이 패전했을 때 일왕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자기들이 왕을 욕보였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해방이 되고서 전혀 왕정을 복귀하거나 최소한 입헌군주제라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에 대해 지난 9일 국회 도서관에서 있은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중국 상하이(上海)대학 스위안화교수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에서 강력했던 공화파 민주주의 사상 덕분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는 중국만 해도 황제 복위를 주장하는 정치운동이 있었으나 한국에는 그것이 없었다면서 그렇게 주장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왕정복귀이 공감대가 형성되니 못했을까?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는 구한말 우리나라를 네 번이나 방문하여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여행담을 런던과 뉴욕에서 출판까지 했다.
일부 왜곡되고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비숍여사의 눈에 비친 당시 조선은 관직의 공공연한 매매. 관료의 부패 등이 심각하게 묘사되어 있다.
심지어 당시 법부대신이 악명 높은 전과자임에도 임명되었고, 한반도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에 백성들은 별 관심이 없더라고 했다.
예를 들어 일본군이 행군을 하며 동네 앞을 통과하거나 청국군이 그렇게 해도 농민들은 그냥 논밭에서 일만 하더라는 것이다. 농민들이 일본군이건, 청국군이건 외국 군대 이동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관료들에게 억압과 수탈만 당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라에 애정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비숍여사는 서울 거리의 더러움도 상세히 묘사했다.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크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은 서울과 달리 깨끗하고 질서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이속에서는 조선 관리들의 횡포가 없기 때문이라는 진단가지 내렸다. 만약 비숍여사가 구한말이 아니란 더 거슬러 임진왜란 대 선조임금이 백성과 운명을 함께 하지 않고 비겁하게 도망가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왜 백성들이 나라를 외면했는지 어 확실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일본이 새 왕의 즉위로, 그리고 영국 왕실이 새 아기 출산으로 들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역사를 생각해 봤다. 역사는 죽은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오늘의 교훈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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