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고 싶은 남자가 있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여자도 있다. 이들은 남편과 자식에게 버림받고 혼자 사는 할머니의 연금을 노리고 그 집에 빌붙어 산다. 생계를 위해 좀도둑질을 일삼고,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 도둑질을 가르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원제 좀도둑 가족)은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어른들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느(날 문득) 가족(이 된 사람들)’. 어디선가 모인 6명의 가족은, 어떤 사연으로 어떤 식으로 함께 살게 됐는지 막내 소녀를 제외하고는 보여주지 않는다. 사회 통념으로 보면 그들은 가족인 척하는 ‘가짜 가족’이지만, 버림받은 가짜들끼리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진짜(혈연관계)보다 더 진짜 같은 가족이 돼간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관계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가족은 불가항력이다. 어떤 이는 가족 안에서 따뜻함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가족 때문에 힘들고 괴롭고 불행하다.
어린이날인 5일 새벽 시흥의 한 농로에서 30대 부부와 4살, 2살 자녀 등 일가족 4명이 렌터카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문이 닫힌 차량 안에서 번개탄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일가족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서는 없었으나 부채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유족 진술로 보아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달 말에는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살해돼 저수지에 버려진 12살 소녀의 죽음이 세상을 비통하게 했다. 소녀의 친모는 재혼한 남편을 도와 딸을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소녀는 친부의 폭행과 계부의 성적 학대에 시달렸다. 가족은 그녀에게 고통만 안겼고, 가족에 의해 살해까지 당했다.
아동학대 사례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1년 2천105건이었던 아동학대는 2014년 1만건을 넘어섰고, 2017년에는 2만2천367건으로 늘었다. 학대로 숨진 아동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총 216명에 달한다. 놀라운 것은 아동학대 행위자 70% 이상이 부모라는 점이다. 아이를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이 황폐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와 이혼, 가정폭력 등 다양한 요인으로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가족윤리가 바닥에 떨어져 패륜 범죄가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이 된 지 오래다. 해마다 5월이면 이런 문제를 걱정하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 건강한 가정 없이 건강한 사회는 없다. 가족? 어렵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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