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상생하는 삶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경험을 갖을때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 나라의 여러 상황의 분위기로 그 나라 국민의 의식을 판단하게 하는데, 소위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와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외형적인 가장 큰 차이점은 차들이 달리고 사람들이 걷는 도로 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경우는 어떻게든 내가 먼저 앞서가야 하고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극도의 이기적 태도를 보인다.

도로 위에서 들리는 차량들의 크락션 소리들과 손가락질로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뱉는 추한 모습들을 보인다. 전혀 여유 없고 매너도 없어 보이는 나 중심의 행동들 속에서 그 속에 있는 인생관과 세계관들을 보게된다. 그런 나라를 다닐 때라면 몸과 마음이 금방 지쳐온다. 그 나라의 좋은 것들도 다 가볍게 보이고 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나라의 매력은 사라져버리고 다시 그곳을 찾고 싶은 마음도 메말라 버리게 된다.

그러나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 들어서면 많이 안정된 분위기를 만나게 된다. 그들 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나, 그 외부의 겉모습은 여유와 타인을 향한 배려가 깃든 모습을 보게 된다. 자국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 그 나라 사람들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이 죄를 선택하던 태초의 범죄자의 모습 속에서 가장 추하게 나타난 죄의 열매는 비교의식 속에서의 이기주의였다.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린 것으로 몰아가는 추한 욕망의 독이 든 열매가 바로 죄였었다. 죄의 열매가 이기주의였다면 그 죄를 이긴 신앙의 열매는 이타주의이다. 죄는 미워하되 그 죄에 무너진 사람들은 사랑할 줄을 아는 따스한 배려와 나눔이 있을 때 믿음이라는 종교의 본질은 회복되어 간다.

언젠가 한 교수님의 강의 속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사람들은 관계 중심적 사고를 하기에 죄에 대한 개념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의 죄에 대한 개념은 약속을 안 지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이 설명은 참 깊은 공감을 갖게 했다. 왜 우리는 한밤중에 다른 차량들이 없을 때면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게 될까? 아마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구 사람들은 그것이 약속이기에 지키려는 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이는 것이다.

모든 방면에 뛰어난 대한민국은 서양과 동양의 장점을 잘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상생할 줄 아는 민족, 평화롭게 개인의 삶을 살다가도 나라가 어려우면 무기를 들고 나라를 지켰던 스님들, 일제의 압박 속에서 용감하게 칼 대신 태극기를 들고 독립운동에 자신을 드렸던 기독교의 지도자 분들 모두가 상생을 알며 사람을 사랑했던 종교의 삶의 열매들이었으리 생각한다.

어느 날 뉴스 속에서 만난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보았다. 응급한 환자를 태우고 복잡한 도로 위에서 응급신호를 울리며 달리는 앰뷸런스에게 도로 위에 모든 차들은 갓길로 붙어 좁은 도로 위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었다. 그 장면은 현대판 모세의 홍해 기적 같았다. 이기주의를 버리고 서로 상생하는 삶을 선택할 때 우리는 매일 우리의 눈으로 기적을 보며 우리의 삶으로 기적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그 기적이 이 땅, 우리들의 삶 위에 그리고 대한민국 나라 위에 다시 세워져가는 기적의 부활을 소망하며 기도해본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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