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선생님, 우린 감사하지 않아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수능 교재가 무거워서 선생님용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이유로 교복 치마를 입고 있던 학생들을 엎드려 뻗치게 하고 위에서 웃던 선생님. 하나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여자랑 스치기만 해도 성희롱 교사가 된다. 참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지’라고 말한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단 하루도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쌤, 집에 데려다준다고 차 태워준 건 고마운데 거기서 제 허벅지를 만진 건 하나도 안 고마워요. 당신이 교사라서 제가 참 걱정이 많습니다.” “대학시절 밥 사달라는 여자 후배에게 ‘열달 동안 배부르게 해줄까’라고 말한 걸 자랑스럽게 얘기해주신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그때는 멋모르고 웃었지만 지금은 그 말에 웃은 제가 소름끼칩니다.”

교사에게 감사를 전하는 스승의날(5월15일)을 앞두고, 스쿨미투 운동을 전개해 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청페모)’이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편지쓰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스승을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지난 11일에는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것은 교권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토크 콘서트도 가졌다. 청페모는 “스승에게 감사를 전하는 스승의 날이지만 스쿨미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진정으로 감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성폭력과 성차별은 교권이 아니다. 더 이상 폭력과 혐오를 휘두르는 스승은 존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쓰기 캠페인에 참여한 일부 편지가 공개됐다. 편지에는 공공연하게 성폭력적인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교사들의 행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청소년과 교사가 교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여 ‘스쿨미투(#Me Too)’에 불을 붙인 서울 용화여고의 스쿨미투 1년을 되짚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청페모는 “스쿨미투 고발을 교권침해로 고소하는 교사, 교원평가에 스쿨미투를 적지 말라고 지시하는 학교, 폭력을 교권으로 오인하는 사회까지. 여전히 학교는, 교육은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용화여고에서 촉발된 스쿨미투 운동으로 지금까지 78곳의 중·고교에서 교사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나왔다.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언어와 신체접촉 폭로는 여학생의 일상이 얼마나 차별, 혐오, 폭력에 노출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돼 수사를 받은 교사 상당수가 불기소 처분을 받아 복귀하는 등 정부의 스쿨미투 대책이 미적지근하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감사할 수 없는’ 편지를 얼마나 써야 하는건가. 감사한 스승도 많은데 묻히는 것이 안타깝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