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낸 시집속 ‘아버지의 마음’ 감동 구절
그 옆 작은 쪽지엔 담임선생님의 응원 문구
아버지 향한 그리움 해소… 마음 치유 도와
스승의 뜨거운 사랑 본받아 교사 꿈 이루다
얼마 전, 중학교 2학년 때 샀던 시집을 넘겨보다 머리끝이 아릿해 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눈길이 멈춰진 페이지에는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가 쓰여 있었다. 그 옆 귀퉁이에는 내가 적었던 작은 그림과- 술병과 술잔이 덩그러니 그려진- 느낌을 담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보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건, 그 페이지에 붙어 있던 선생님의 작은 쪽지였다.
나는 벌써 사회에 입성한 지 7년이 된, 초등학교 교사. 그리고 정말 어른이 되어 다시 그 시집을 꺼내 들 날이 올 줄 알고 계셨던 곽진경 선생님. 그 분의 정갈한 필체를 보고나니 접어두었던 추억들이 살포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슬픈 감정이 점점 옅어지는 대신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다른 감정은 바로 부끄러움.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나를 위축시켰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 진학해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숨기게 되었다. 오죽하면 친구들 앞에서 아버지가 사주었다며 새 신발을 자랑하고 나서는, 이런 나의 신세가 처량하고 슬퍼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날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부끄럼 많은 여학생의 가슴에 무거운 추처럼 매달려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겉으론 활발하지만, 부끄러운 속마음을 지닌 채, 2학년이 됐다. 담임선생님이자, 국어 선생님이셨던 곽진경 선생님께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읽고 간단하게 책 귀퉁이에 적어오는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시집을 골라 읽어보았다. 그리고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를 접하게 됐다.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눈물이 절반이다’라는 구절이 어찌나 나의 마음을 사로잡던지. 아버지가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림과 간단한 느낌을 썼다. 내게는 처음으로 아픔을 꺼낸 시간이었다. 하지만 비로소 내 아픔을 해방시켜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첫 경험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쪽지 한 장이 꽁꽁 감추어둔 부끄러움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의 격려 쪽지를 받고 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렇지만 나는 괜찮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더이상 내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라는 의지를 북돋아주신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의 쪽지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기분 좋은 첫 만남 이후, 따분한 국어수업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또 선생님은 학생들 대답을 기다려주셨고, 어떤 대답을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해주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중학교라는 곳이 그렇게 숨이 막힐 것 같은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나는 수업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선생님을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선생님의 마음에 들고 싶어 반장선거에 나가 처음으로 반장이 됐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단에 서서 아이들의 눈을 바라봐주고,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 마음을 간직한 채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에 진학해 교사가 됐다. 5월 카네이션 한 송이 가슴에 달아 드릴 수 있다면 선생님의 사랑을 먹고 자란 제자 장영화가 여기, 지금 이렇게 다시 사랑을 나눠 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화성 안화초 장영화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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