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반바지의 계절

이호준 사회부 차장 ho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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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굵어도 걱정, 너무 가늘어도 걱정…”

올해도 어김없이 더위가 찾아오면서 최근 수원시 공무원들은 조금 특별한 고민을 하고 있다. 50대 중반의 한 수원시 공무원은 “이제 곧 반바지를 입고 출근할 텐데, 다리가 너무 하얗고 털도 없어서 걱정”이란다. 다리에 털이라도 많으면 하얀 피부가 가려지기라도 할 텐데, 털도 없어 중년의 나이에 새하얀 다리를 내놓기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또 다른 40대 남자 공무원은 다리가 너무 가늘어 반바지 착용을 고민 중이다. 웬만한 여성보다 다리가 가늘어 반바지를 입고 밖을 나서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일쑤란다.

이렇게 투덜댔지만 이들의 표정은 유쾌하고 밝았다. 그리고 결론은 모두 “그래도 입어야지!”다.

수원시가 지난해 여름 도입한 ‘반바지 출근’. 도입 초기에는 공직사회에서도, 시민들에게서도 ‘파격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한 시선 속에서도 염태영 수원시장은 공식 행사장에 반바지를 입고 등장, 반바지 착용을 몸으로 보여주며 수원시 공직사회에 반바지 출근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현재 반바지 착용을 ‘파격’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최근 경기도가 실시한 ‘경기도 공무원 복장 간소화 방안(반바지 착용) 관련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1천621명 중 80.7%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공무원 65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79%가 찬성했다. 이에 경기도는 오는 7월과 8월 공무원의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수원시에서 시작한 작지만 큰 변화가 경기도 공직사회도 변화시킨 것이다.

수원시는 반바지 착용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에 내빈석을 없애고, 국경일·국제행사를 제외한 모든 의식행사는 20분 내외, 실외 행사나 참석자들이 선 채로 진행되는 의식행사는 10분 내외로 끝내는 ‘의전 간소화’와 회의 자료 책자를 없애고, 회의 참석자들은 개인 컵을 사용하는 등 격식을 탈피하는 ‘회의 문화 혁신’도 추진하고 있다.

반바지를 입고, 회의에 개인 컵을 사용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것에서부터 한 걸음씩 혁신한다.

이호준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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