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戰時) 영웅은 군인(軍人)에서 나오고, 평시(平時) 영웅은 운동선수에서 나온다고 했다. 평시 대한민국을 보름간 뒤흔들었던 젊은 영웅들이었다. 한국 남자 축구사에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아시아 남자 축구 최초의 FIFA 대회 MVP도 거머쥐었다. 적진(敵陣)을 휘저었던 오세훈, 중원(中原)을 진두지휘했던 이강인, 수문(水門)을 굳게 지킨 이광연, 그리고 경기장 안팎에서 힘을 모았던 선수단 모두가 영웅이다.
결승에서는 졌다. 선제골을 넣고 시작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3개 실점 가운데 2개가 우리 수비진 발에서 어깃장이 났다. 불운의 기운이 경기 내내 한국팀 주변을 어른거렸다. 운을 탓할 만도 했고, 수비수를 원망할 만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러지 않았다.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이강인), “울고 싶었지만 팬들을 생각해서 참았다”(오세훈)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골키퍼는 “내가 미안하다”며 수비수를 위로했다.
국민에겐 처음부터 특별했던 대회다. 특히 주목했던 건 애국가 열창이다. 대회 초반 이강인 선수에게서 시작된 현상이다. ‘애국가를 큰 소리로 불러 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강인의 답은 이랬다. “그냥 크게 부르면 좋을 것 같다…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크게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일본 경기를 앞두고였다. 이후 모든 경기에서 국민들은 애국가를 눈치 안 보고 따라 불렀다.
과거 운동 경기는 애국심의 한 부분이었다. 국제 대회에서 승리한 선수는 반드시 ‘국가’를 섞어 소감을 말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선수 얼굴 뒤에는 늘 태극기가 오버랩됐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사라졌다. 태극기는 그저 소속 팀을 상징하는 마크 정도로 여겨졌다. 이보다는 개인의 영예와 연결짓는 관점이 컸다. 병역 특례 자체가 애국심과는 무관한 개인적 이익의 영역이다. 이런 풍조에서 등장한 ‘애국가 열창’ 대회였다.
순박했기 때문에 더 아름다워 보인 애국심이었다. 승리한 뒤 선수들의 모습은 젊은 그 자체였다. 버스 안에서는 가요를 목이 터져라 ‘떼창’했다.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모습도 없었다. “울지마, 창피해”라던 이강인의 익살 속에 2019년 젊은이의 모습이 있다. 마이크 앞에서 저마다 쏟아내는 우스갯소리도 이 시대 젊은 세대만의 여유였다. 결승에 졌지만 누구 하나 후회하지 않았다. 의연히 손을 흔들며 경기장을 떠났다.
이번 U20 청소년 대표단은 대한민국의 영웅이었다. 쭈뼛대던 애국심에 당당함을 일깨워줬다. 태극기가 대한민국 모두의 자랑임을 보여줬다. 36년 전 ‘멕시코 4강의 기적’도, 17년 전 ‘월드컵 4강의 기적’도 모두 과거의 평범한 역사로 만들어버린 대한민국 축구 선수단. 그들이 남긴 가장 큰 역사는 ‘순박해서 더욱 당당해 보이는’ 젊은 애국심이다. 태극기가 왜곡되고, 애국가가 외면되는 기성 시대에 주는 교훈이 참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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