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면접교섭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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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혼 통계’에 따르면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의 이혼이 총 4만9천400건에 달한다. 미성년자 수만명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 이혼을 경험한다. 이혼으로 부부의 연이 끊어졌다 해도 아이에게는 여전히 아빠ㆍ엄마가 존재한다. 미성년 자녀라면 부모의 사랑과 손길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법원은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한쪽 부모가 자녀와 직접 만나거나 편지, 전화 등을 할 수 있게 ‘면접교섭권’을 주고 있다. 자녀를 면접교섭권의 주체로 인정해 아이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1990년 만들었다.

부부 사이에 자녀가 없으면 이혼 합의가 비교적 쉽다. 감정적으로 골이 깊어도 소송까지 하게 되면 이혼의사와 금전 합의만 있으면 대부분 해결된다. 그러나 자녀가 있는 경우엔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다. 양육권ㆍ양육비 외에 두 사람이 치열하게 다투는 것이 ‘면접교섭’이다. 면접교섭에 대한 다툼은 횟수가 가장 많고 장소, 시간, 동행자 허용범위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법원에서 정해주는 면접교섭 횟수는 대개 한 달에 2회, 1박 2일 정도다. 이를 두고, 어떻게 자식을 한 달에 두 번만 보라 하느냐며 가혹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달에 두 번이나 보면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많다는 사람도 있다. 각자 처한 상황이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면접교섭은 한 번에 합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혼 소송을 하면 이런 견해차로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은 사람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 소송 중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한쪽 부모를 만나지 못하는 아이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법원 명령에 불복해 자녀를 보여주지 않는 이들이 있다. 가정법원에 ‘면접교섭센터’가 생겨 예전에 비해 면접교섭이 원활해졌지만 소송 이후 양육권자가 의도적으로 자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제재가 미흡하다. 면접교섭센터는 아이가 중립적이고 안전한 환경에서 보통 격주 1회 비양육자를 만나고, 부모 사랑을 재확인한다는 장점이 알려져 호응도가 높으나 예산과 인력난으로 전국에 3곳 밖에 없다.

전 남편을 끔찍하게 살해한 ‘고유정 사건’도 면접교섭 문제로 불거졌다. 이혼 후 고씨가 2년간 아들을 보여주지 않자 피해자 강모씨가 면접교섭권 소송을 걸어 승소했고, 첫 교섭일에 무참히 살해됐다. 이들은 교섭 장소로 제주의 펜션을 잡았고, 고씨는 그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제주에도 면접교섭센터가 있었다면 잔혹한 범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혼 부모의 자녀 면접교섭은 복지행정 차원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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