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일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소재를 공급받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서는 화웨이 사태보다 더 큰 태풍이 몰려왔다고 걱정이다.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일 관계 악화를 사실상 방치해왔던 청와대와 외교부는 ‘경제 문제’라는 이유로 대응을 경제 부처들에 떠넘기고 뒤로 빠졌다. 청와대는 징용 판결 때는 “사법부의 결정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니 일본이 ‘경제 보복’으로 나오자 “담당 부처가 대응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러고도 나라라고 말할 수 있나. 경기일보는 2019년 1월9일 ‘위기의 한·일 관계 이대로 좋은가’ 제하의 사설과 4월4일 ‘일본의 레이와 시대를 보는 우리의 심정’이라는 사설을 통해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일본의 강경 대응을 예고했고 기금조성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5달이 지난 후에 우리 정부는 기금을 조성한 후 그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일본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뒤늦게 한·일 정상회담 무산을 염두에 둔 ‘면피용’ 대책이라는 것을 일본이 알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경제 보복에 나설 것이란 예상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줄곧 제기돼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8개월 동안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방관했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준비한 여러 보복카드 중에 이제 겨우 한 개가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에 이어 농·수산물 수출 제한, 단기 취업비자 제한, 송금 제한 등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아베와 일본 정부를 욕하고 비난한들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기업과 국민이다. 일본의 치졸하고 편협한 행태를 몰랐단 말인가. 일본 내부에서도 “일본발 공급쇼크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자국 기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징용 판결과 한·일 기본조약 실질적 파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요지부동이다. 얼마 전 G20 정상회담에서 8초간 만난 문 대통령과 아베의 사진이 양국의 현주소이다. 일본의 보복이 더 커지기 전에 청와대와 정부는 실효성도 없는 맞대응을 하기보다 갈등을 해결하는 적극적 외교 정책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조치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내 기업이지만 일본 기업 역시 상당한 피해를 보기 때문에 해법이 전혀 무망한 것은 아니다.
청와대는 지금 판문점 북·미 깜짝 이벤트회담을 ‘종전선언’이니 뭐니 하면서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끌 생각을 해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은 기술 개발과 통상 다변화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싸움에서 실질적인 보복단계로 들어선 지금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의 각오로 아베 총리와 담판에 나서야 한다. 실권도 없는 부처에 책임을 떠넘길 일이 아니다. 진정한 지도자의 역량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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