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친한 검사와 밥을 먹다 얘깃거리가 떨어지자 툭하고 습관처럼 물었다. “요샌 뭐 주시하는 거 없습니까?” 그러자 1초의 주저함 없이 그의 입에서 답이 나온다.
“인지수사 안 하는 시기 잖아요.” 가볍게 시간이나 채우자고 던진 질문에 순간 무거운 돌덩이가 얹힌 듯 가슴이 갑갑해졌다.
인지(認知). 오랜만에 국어 사전을 펼쳐 찾아보니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이라는 말 뜻이 나온다.
인지수사는 검찰이 직접 어떤 범죄의 단서를 찾고 수사를 시작하는 일이다.
“아니 그럼 지금 검찰은 뭘하고 있습니까?” 묻자 “일단 8일만 보고 있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8일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있는 날이다.
윤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검찰은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나설 것이다.
누군가는 용퇴라는 문화로 옷을 벗을 것이고, 또 여기 저기 다른 청으로 옮겨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새로운 수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게 청사 안 분위기란다. 어차피 옮겨갈지도 모를 일인데 괜히 끝맺을 수 없는 일에 시간을 쏟지 않겠다는 얘기다. 일면 이해가 되면서도 어쩐지 뒷맛이 씁쓸했다.
검찰 인사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결국 그들의 ‘직장생활’에 불과하다.
어느 공무원의 인사 이동이 국민 인권보다 우선할 순 없을 것이다. 비단 올해 만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검찰을 출입한 몇 년동안 인사철만 되면 같은 분위기가 반복했다.
수사권 조정안에 목소리를 높이며 직접 수사와 수사 지휘를 수호하려는 검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윤석열 후보자는 검찰에서도 알아주는 특수통이다. 바꿔말하면 직접 수사의 달인이기도 하다. 또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도 직접 수사 옹호론을 펼치는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런 그의 청문회를 앞두고 검찰 조직이 변화를 걱정하며 수사에 손을 놓는 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그랬다. “검찰이 수사를 안 해주면 소는 누가 키웁니까? 우리도 인사이동하면 펜 좀 놓아도 되는 건가?” 순간 발갛게 달아올라 쑥쓰러워 하는 그를 보니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보였다.
김경희 인천본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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