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한국을 배제하고 북·미 양자 간의 담판을 통해 해결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달 30일에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을 막후 조율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양 정상이 만나기 직전에 한국의 여권인사들에게 그러한 북한의 요구를 전하면서 드러났다. 비건에 따르면 북한이 북핵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한국을 패싱하고 미국과의 양자 담판을 요구하는 표면적인 명분은 비핵화 협상의 패스트 트랙을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패스트 트랙을 명분으로 또다시 그들의 전형적인 수법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앞으로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논의에서 한국의 중재를 거치지 않을 경우에 설사 핵협상이 핵동결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해도 우리로써는 그 경과를 알지 못할 개연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걱정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경계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동의하면서 일단은 금번 북한의 한국 패싱 요구의 목적은 북·미 간의 직접 담판으로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고, 한국과는 경협을 위시한 제재 완화의 문제를 풀어갈 때 대화하겠다는 의도라는 데 그 무게가 실린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가 있다.
첫째, 기대했던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보장받지 못한 김정은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경제제재를 완화하지 못하면 체제를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제재의 여파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톱다운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미국과의 관계개선 등 외교적 성과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셋째, 비건 미 대표에게 밝힌 북한의 핵협상 관련 입장과 태도를 보면 종전에 북한이 견지해왔던 주장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2차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 영변의 핵시설 폐기에 한정했던 북한은 영변을 시작으로 다른 곳으로, 즉 영변 핵 플러스알파로의 확장개념을 제안했으며 또한 제재 완화에 대한 논의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공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회담에 대하여 자신들이 신축적이고 유연한 입장에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담판하려는 정확한 진의는 북·미 만남을 계기로 부활한 북·미 사이의 비핵화 실무회담의 전개과정을 지켜보아야만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를 위시해서 작금에 남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은 한반도 문제의 외교적 역학관계의 복잡성과 역동성을 적나라하게 반영해 주고 있다. 예컨대 미국과 첨예한 무역전쟁의 와중에서 지난달 G20 정상회담 직전에 북한을 방문했던 시진핑의 북핵 중재자 역할이 트럼프의 트위터 메시지를 단초로 시작된 판문점 회담으로 7일 천하로 끝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단적일 실례일 듯싶다.
물론 미국은 자신들의 북핵 해법의 기조를 CVID에 두고 있고 이를 위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제제 완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북·미 양국의 ‘북핵’에 대한 시각 차이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북핵문제도 미국의 대선일정과 맞물려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불가예측성이 증가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한국 패싱전략이 더욱더 신경이 쓰이는 이유다. 분단 이후 북한은 우리에게 한 번도 정상국가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렇다.
유영옥 국민대 교수국가보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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