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 발령이 있을 만큼 몹시 더웠다. 나는 무더운 여름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욱 생각난다.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아버지 기일이 음력으로 7월 초, 양력으로는 8월 초 무더운 여름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 고향 시골 마을에 사시며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가 한여름이면 복숭아를 먹으러 시골 고향마을에 오라고 전화하시곤 했던 기억 때문이다.
나의 고향은 복숭아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한여름이면 늘 복숭아를 먹으며 자랐다. 할아버지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처음으로 복숭아 농사를 지으셨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우리 집 가까이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다. 점차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따라 밭이 있으면 대개 복숭아나무를 심었고 복숭아를 재배하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어야만 맛볼 수 있는 복숭아 맛을 경험했다. 완전히 익은 복숭아는 냉장고 밖에서 2~3일 정도 지나면 농익어 물러버린다. 그래서 유통을 위한 복숭아는 현지에서 먹기 좋게 잘 익기 전 이틀이나 사흘 정도 먼저 따서 가락동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사먹는 복숭아는 하루 이틀 정도 덜 익은 것이다. 그러니 과수원의 나무에서 잘 익은 복숭아와는 맛에 차이가 생긴다.
복숭아 맛의 차이의 원인은 이 외에도 많다. 과수원의 위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복숭아를 기르는 분의 기술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가지치기와 접과를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떤 거름을 언제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복숭아나무가 병충해에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같은 사람이 기르는 같은 과수원의 같은 나무라고 해도 그 나무 수령에 따라서, 또 같은 나무라고 해도 복숭아가 달린 가지의 위치, 또 같은 하나의 가지에 몇 과의 복숭아가 달렸느냐에 따라서도 미세하게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이것들을 구분할 수 없는 것 같다. 또 나와 같은 고향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런 미세한 차이를 얼마나 잘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복숭아 농사를 잘 짓는 편이셨던 것 같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아버지가 복숭아 농사를 가장 잘 지으셨던 것 같다.
나는 맛의 차이가 느껴져서 고향 복숭아가 아니면 거의 사먹지 않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복숭아를 많이 먹고 자랐지만, 고향에 사는 동안에는 복숭아가 풍성했기 때문에 내가 복숭아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부천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복숭아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름이 되었는데도 고향에 가서 복숭아를 먹지 못하면, 나는 안달이 났다. 한여름 주말이면 복숭아를 먹어야 해서도 고향을 가야 했다. 집에서 먹을 복숭아가 떨어지면, 더더욱 안달이 났다.
아버지는 내가 복숭아를 무척 좋아하는 걸 당연히 아셨을 것이다. 어느 해부터는 우리 과수원에서 가장 큰 복숭아를 따는 날이면 전화하셔서 복숭아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5㎏짜리 복숭아 한 상자에 10개 이하가 들어가는 크기 복숭아면 최상품이다. 그런 복숭아가 나무에서 농익어 완숙된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이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것과 같이 맛있는 복숭아 맛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건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맛이다. 그런 복숭아를 직접 맛보려면, 어느 과수원이든 그것을 따지 않고 따로 익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아버지는 그 복숭아를 놓아두시고 매해 나에게 전화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따로 남겨놓은 완숙된 복숭아 맛을 볼 수 없다. 나는 요 며칠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일명「부모은중경」)을 읽으며, 부모님의 자애와 자식의 효를 생각했다. 곧 다가올 음력 7월 초에는 아버지 제사가 있고, 음력 7월15일은 우란제일(盂蘭祭日)이다. 한여름이면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아버지의 복숭아가 더 그립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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