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치워 이 XX야, XX놈이 말로 하니까 안 되겠네” “어디서 6급 따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구를 해?” “육아휴직 내면 돌아올 자리는 없어” “빨리 관두는 게 회사에 도움되는 거니까 출근 하지마. 다른 직장 알아봐”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주도해 만든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들이다. 막말과 모욕, 협박에다 폭행을 당했다는 직장인까지, 갑질 제보가 줄을 잇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폭행,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엽기적 갑질 행각, ‘태움’ 문화로 인한 간호사의 자살 등 그동안 드러난 사건만 봐도 심각함을 넘어 충격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직접적인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66.3%에 달했다. 유형별로는 명예훼손·모욕 등 ‘정신적 괴롭힘’이 24.7%, 사적인 일을 시키거나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지시하는 등 ‘과대한 요구’가 20.8%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해서 불거지며 사회적 이슈가 되자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등 개정안)’이 통과됐다. 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오늘부터 시행된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즉시 사건을 조사해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지를 바꿔 주거나 유급휴가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괴롭힘이 발생한 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폭행과 폭언, 협박 등이 직장 내 괴롭힘의 대표적인 행위다.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돼 있지 않은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 흡연, 회식 참여를 강요하거나 집단 따돌림, 신체적인 위협, 업무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흔히 있는, 모임이나 회식에서 노래 등 장기자랑을 억지로 시키거나 폭탄주를 강요하는 것도 안된다는 얘기다. 상사의 흰머리 뽑기, 라면 끓이기도 당연히 안된다.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익명 신고가 어렵고 가해자가 사용자일 때도 사용자에게 신고해야 하는 건 한계다.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했지만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과태료나 벌금 등으로 처벌할 수 없는건 문제다. 애매한 법 조항 때문에 시행 초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본격 법 시행으로 갑질, 왕따, 부당지시 같은 낡은 조직 문화가 개선될 지 주목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