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교묘해진 탈세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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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접객원만 수백 명에 달하는 호화 룸살롱 실소유주 A씨는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면서 걸핏하면 개업과 폐업을 반복했다. 개업할 때마다 친인척 명의를 빌려 룸살롱 소유주가 달라진 것처럼 위장했다. 여러 사람 명의로 나눠 수입 금액을 줄이면, 적용 세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A씨는 손님에게 팔 술을 사들일 때 세금계산서 등 증빙서류를 남겨두지도 않았다. 술을 팔아 얼마나 벌었는지 감춰야 세금을 덜 내기 때문이다. 이 업자는 실제 매출액이 기록된 회계장부를 별도 비밀사무실에 보관하는 등 세금을 안 내려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국세청에 덜미가 잡혀 소득세 400여억 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유명 DJ 공연으로 젊은층이 많이 몰리는 나이트클럽의 실소유주 B씨는, ‘MD(Merchandiser)’로 불리는 영업사원이 인터넷 카페나 SNS에서 ‘조각모음’을 통해 테이블(지정좌석)을 판매하고 술값은 모바일 결제를 통해 MD 계좌로 받는 수법으로 세금을 빼돌렸다. 역시 국세청에 적발돼 30억 원을 추징당하고 고발 조치됐다.

유명 영어학원 원장 C씨는 고액 학원비를 9살 조카, 2살 지인 자녀 등 미성년자 명의 차명 계좌로 받고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다 적발됐다. C씨는 세금 12억 원과 함께 수억원대 현금영수증 미발급 과태료까지 추징당했다. 대부업자 D씨는 다른 직업이 있는 부모나 형제 등 일가족을 대부업자로 등록하고 자금난을 겪는 영세업체에 고리로 급전을 빌려주고는 이자는 현금이나 우편환 등으로 받다 적발됐다.

국세청이 서민 생활에 피해를 주는 민생침해 탈세 혐의자 163명에 대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민생침해 탈세자는 유흥업소, 불법 대부업체, 예식장, 장례식장, 학원 등 서민을 상대로 영업을 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도 조세를 회피하는 범죄자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자영업ㆍ중소법인 형태로 영업을 하는데 탈세 수법이 교묘하고 기상천외하다. 과거엔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으로 상품·서비스를 판매한 뒤 매출액을 숨기는 방식을 썼다면, 최근엔 종업원 명의를 빌려 지분 쪼개기 등을 통해 명의를 위장하는 형태도 등장했다. 2살배기 계좌로 학원비를 받은 황당한 수법도 있다.

이번에 적발된 탈세자들은 많이 버는 사람들이다. 축적한 부를 통해 사치생활을 하면서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는 것은 용납돼선 안된다. 대다수 성실 납세자에게 상실감을 주고, 경제적 약자인 서민층에게 2차 피해를 야기한다.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고, 불법으로 얻은 수익은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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